에세이의 시작과 쓸모
‘복잡한 감정. 먼저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이해한다. 다음엔 그 감정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를 통로 삼아 경험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이 곧 경험임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쓰기 시작한다.’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에세이를 쓴다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에세이는 소설이나 시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글이다. 비비언 고닉의 말처럼, 때로는 스스로를 발가벗기는 일과도 닮아 있다. 꾸며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꺼내 놓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세이는 무엇보다 자기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좋다, 혼란스럽다, 들뜬다, 복잡 미묘하다, 애매하다. 쉽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설명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멋진 문장이 아니라 먼저 내가 지금 어떤 감정 안에 들어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어떤 장면이 이 감정을 만들어냈는지를 찬찬히 바라보는 일이다. 에세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글은 쉽게 길을 잃는다. 감정을 외면한 채 쓰는 글은 마치 강단에 선 연사와도 같다. 정작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른 채 말을 이어가는 사람. 어디로 가는지,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문장만 앞으로 밀어붙인다. 그런 말은 결국 길을 잃는다.
반대로 글을 쓰다 보면 우리는 자기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경험했던 순간과 그때의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일, 가장 적확한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문장을 다듬어 나가는 일은 결국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그때의 내가 정말 이랬나?
내가 느낀 감정이 이게 맞나?
그것보다는 조금 더 고요하고 차분하지 않았을까.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지.
나는 어떤 행동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지.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의 장면이 조금씩 다시 살아난다. 동시에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달라진다. 감정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반응, 타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났던 미묘한 공기들까지.
그렇게 나와 타인, 그리고 상황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동안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간다.
그래서 에세이를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기억 속의 나를 다시 불러내어 묻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일.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에세이는 그 과정을 기록하는 글이다.
나를 조금 더 알아가기 위해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