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한 게 아니라,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삶의 안과 밖에서 열심히 두드려 맞고 KO패를 당하던 그때 다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다 털어버리고 반년을 쉬고 그렇게 싫다던 일을, 심지어 뛰쳐나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반년의 회복 기간은 나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심리적으로 나아지자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망원동 방구석에 처박혀서 매일 중독된 듯 술을 마시며 고통을 씻어내고 그것이 회복이 아님을 깨달으며 벗어나려는 순간들의 연속에서, 그 고통의 굴레에서 쳇바퀴 돌듯 발버둥 치고 있던 나에게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아이러니였고 오히려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2018년의 여름은 웬만큼 멀쩡한 정신력으로도 버티기 힘든 여름이었고 축 쳐진 몸과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정신상태는(아마도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일하는 것이 더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난 기회인지 아닌지 모를 그걸 놓치지 않았다.
다시 수입이 생기면서 본래 살던, 고향과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일하는 동안 이사를 왔고, 사고 싶은 것들을 맘껏 샀다. 돈이 생기니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행동이 아니라 구매에서 그치는 것들이다. 관심이 있던 것들을 마구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클릭 몇 번으로 내 통장의 숫자가 요동 칠 때마다 그렇게 집에는 하나 둘 가족 같은 녀석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말하는, 마치 상상임신과도 같은 그 정신세계는 내 자린고비 같은 소비습관과 뒤섞여서 애매하게 그리고 엄청나게 지출해대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꾹 참고 이것저것 사댔던 것은 어쩌면 축 쳐진 정신상태를 붙잡아줄 직장생활에 대한 반사 불이익을 상쇄시키기 위한 어떤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내게는 정말 필요했던 것들이었음은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음악, 그림을 그리고 싶거나 더 스마트하게 일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들, 그리고 또 무언가 어쩌고 저쩌고...
일로써 정신상태를 다잡은 지 반년 만에, 내 정신상태는 이제 일 때문에 다잡기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시작되었다.(물론 버틸만한 직장 스트레스 범위 내였다.) 결국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일하고, 혼자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아무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은 채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내일이 오는 것은 죽어도 싫어하면서 어느 방향에서든 스트레스를 받고자 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완벽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샀던 것들을 전혀 돌보고 있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스트레스를 알아서 찾아 먹어치우는 로봇청소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일을 다시 하기 이전의 그 고통을 이겨내고자 먹었던 음주를 아직도 완벽하게 멈추지 못함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진 채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이전보다 심해졌다. 나만 잘하면 된다에서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했고 싫어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자처했다. 그것이 심각해지고 나니 급기야 이제는 내 집에 있는 사물들에게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직장에 뿌리를 박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가 가장 상식적이지 못하면서 가장 상식적 인척 하는 인간이 된다. 한 번 벗어나면 쉽다던데 그렇질 못했다. 갑자기 진짜 자유를 찾겠다며 엉뚱하게 4년을 더 버텨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다른 요인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샀던 물건들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망설였다. 내가 그렇게 무턱대고 샀던 것들이긴 하지만 내 미래이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번이라도 잡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로 '해야 하는데... 저거 해야 하는데...' 하며 지켜보기만 하고,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양산하고 있는걸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가장 아끼는 마음가짐이자 가장 먼저 덜어낼 수 있는 짐이었다. 결국 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을 던져버렸다.
거의 다 던지고 나니까 나한테 남은 건 일과 맥주, 그리고 무의미한 시간만이 남았다. 내가 그렇게 되고자 하던 것들을 손도 못 대고 다시 다 던져버렸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되고 싶은 나와 될 수 있는 나는 정 반대에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괴리감을 난 좁혀 나갈 수 있을까?
결국 버티고 서 있으면 언젠가 다시는 기회가 오겠지. 그때 다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다시 시작해보자고 다짐해본다. 포기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