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밖에... 없나?
생각해보니 10대, 20대, 30대마다 한 번씩은 꼭 무너지는 시기가 왔다. 10대 때는 열등감 속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지며 이후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고, 20대 때는 어린 마음에 갈피를 못 잡아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짧지만 이 5년 사이에 나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있었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기도 한 그런 미적지근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상처를 통해 단단해지고 발전한다고 배웠다. 배웠다는 거지 나라는 인간도 그렇게 단단해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확실히 상처 입고 실패해왔던 시기들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의 나를 보면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만 했지, 좋아진 적은 없던 것이었다. 단적인 예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려고 여러 가지 친목 모임들을 많이 나가봤는데 딱 그때뿐이었다. 사실상 내가 취하고 있던 스탠스는 '적당히'의 관계였다. 사람이 고팠지만 편의점식 인간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꼭 사람이 주변에 많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스탠스를 이렇게 정했다고 해서 내 외로움이 어딜 가는 것은 아니다. 내 애매한 마음가짐 덕분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는 사람을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일과 취미 밖에 남지 않았고 이 마저도 모든 취미를 정리하게 되면서 내 인생은 일과 맥주, 그리고 Youtube 속에 갇힌 이상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예전에는 풀 데가 있었다. 게임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고민 없이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나마 거의 하지 않는 게임도 켜기만 하면 화만 날 뿐이고, 때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그나마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지인들도 만나기 어려운 시기라서 일이 끝나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더라도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게 된 나에게는 '코로나 때문에'라는 핑곗거리가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줄 때도 있다. 뭐 어쨌든 해외여행을 잘 가지 않아도 가지 않는 것과 가지 못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일만 남아버린 삶은 굉장히 고단하다. 그것이 내 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은 능력과는 별개인 데다가 일하고 있는 순간들은 아무리 잘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일이 끝나는 그 순간은 칼퇴근을 해도 이미 번아웃이 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를 더 할 수가 없어지다 보니까 사람을 더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도 만날 생각이 없어지고,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과 눈뿐이다. 더 이상의 두뇌 활동을 거부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정신상태는 버뮤다 삼각지대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영원히 그 안에서 나가지 못한 채로 죽을까 봐 두려울 정도가 되면서 머릿속은 '해야 되는데'와 '귀찮아서 못하겠어'의 무한 반복, 그리고 그 무한반복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루가 끝나곤 한다.
일 말곤 하는 게 없는데 일 마저 버티기 힘든 마음 상태. 아니, 버틸 수는 있는데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정신상태 때문에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려고 한다. 이게 참 신기하다. 이제 와서는 사람은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되었고 사람이 계속 살아가려면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니 만들어 놓은 취미들은 이제는 '스트레스를 풀어야'하기 위해 만든 '필수과제'처럼 되어버렸고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 또한 틈틈이 사놓고 나니 물건들이 눈에는 보이는데 몸은 거부하는 상황이 와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게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결국 이 스트레스의 해결책은 다시 퇴사로 귀결된다. 하지만 난 4년은 더 버텨보자고 마음먹은 터라 다시 행복 회로를 돌려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이게 올해의 내 인생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젠장.
가난을 알기 때문에 물질적 안정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 한 번 포기했을 때 더 과감했어야 했는데 왜 이 감투라는 이름의 오물을 뒤집어써가지고 마음의 안정을 내던졌는가. 어쩔 수 없다. 안되면 될 때까지 노력하는 수 밖에는... 4년을 버티면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자. 그래야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아차... 결국 여기서도 안정적인 것을 따지고 있다 나는. 어쨌든 난 조금 더 나은 답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