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더이상 만나면 안될까?

by 신호등

내게 한결같이 한달에 한 번 정도 연락을 주고 매 달 술 한잔씩 기울이는 친구가 있다. 학창시절에 알게된 친구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서로가 연락을 일년에 열두번은 한다는게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어쩔때는 '대체 얘는 왜 내게 연락을 주는걸까?'하는 궁금증이 너무 많이 차올라서 직접 물어보기도 했지만, 신통치 않은 대답을 주곤 했다.

아니나다를까, 매번 만나서 술을 마시면 이 친구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술만 먹자는건지, 그냥 내가 나불거리는게 좋아서 그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긴 침묵이 싫어서 매번 이 친구에게 톡 쏘아붙이는 말을 하던가 아니면 온종일 내 푸념만 늘어놓게 된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어서... 그렇게 매번 "왜 너는 말을 안하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면 별 일 없다고만 하고... 대체 나랑 술을 왜마시는거야?" 이렇게 묻곤 했다. 그 대답 또한 내가 봤을떈 시덥잖은 내용이었다. 그저 그렇게 말하고 웃을 뿐이었다.


내가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내 우울한 소리는 점점 심해져갔다. 가족에 대한, 지인에 대한, 혹은 어떤 이성에 대한 결과론적으로 최악이기만 했던 내 삶을 읊조리는데는 그 친구가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였다. 진짜 오래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이 친구가 말이 없다고, 무슨말이라도 해야겠다고 하다가 술이 계속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런 말들을 도무지 멈출줄 모른다. 매번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술이 들어가면 또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날따라 술도 꽤 많이 들어가더라. 정확히는 나는 조금씩 마시고 있었고 그 친구가 꽤 많이 마셨던것 같다. 한 4병 가까이 마셨으니... 그런데 이 날 처음으로 본인 얘기를 조금 했다. 그리고 난 이후에 충격을 받았다.

이 친구는 분명히 어느 시점까지는 평소에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는걸 좋아했다. 그러나 힘든 일을 겪고나서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이 오를때면 울기도 하고 있다고... 그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드디어 내게도 자신의 얘기를 해줬다는것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다른 친구들 앞에선 자기 얘기를 많이 해왔구나 하는 사실?같은것도 깨달으니 반면에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행동을 갑자기 비틀어서 이상하게 위로하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난 취해서 그친구에게 내 얘기를 다 한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염세적이고 까탈스러워지는것에 대해서, 그것들이 현대 사회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고 난 그것이 당당한것처럼 설전을 펼치거나, 또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런 부정적인 부분들만 모아서 말하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어 잘하고싶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바뀌고 싶다는 이야기 등... 구구절절하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그 친구가 힘들어할만한 이야기도 속해 있었다. 구지 할 필요도 없거나 하면 안되는 그런 이야기가 사이에 껴있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여전히 웃으며 나랑 술 한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그 날도 마치 어김없이 하루를 마감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가는길에, 버스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힘듦은 비교하는것이 아니라곤 하지만 현재는 나보다 그 친구가 더 힘든게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난 그친구가 힘들어하고 있었을 반 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우울같은 녀석이라던가 힘든것, 현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그저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닫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바보같은 놈이 되어버린것 같았다. 아... 대체 내가 무슨짓을 하고 있던 걸까?


우울은 전염되기 쉽다. 무조건 전염된다고 확정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결코 좋은 기운을 줄 수가 없다. 내가 당했던것을 남에게 하고있는게 아니었을까? 내 몇 안되는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힘을 주는 것과는 다르게 그친구의 힘을 빼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친구를 더이상 만나면 안되는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일정 시간동안이라도 말이다. 너무나 터무니 없이 생각없이 그 친구를 대한것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다음에 볼때도 내가 취해서 그런 소리를 안할 수 있을까? 난 너무 내 코앞의 위험만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 그 친구가 부디 빨리 힘든 상황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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