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기회를 포기했다.

by 신호등

난 이 일이 너무 하기 싫다. 기술에 민감한 부분에서 도전하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어느 사업분야를 가도 꽤나 비슷한 루틴의 일을 하게 되는것도 지루해졌고, 이 자체를 사업으로 이어나가는 거의 최전선에서 일하길 원해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기업이란건 나라는 일개 사원이 원하는 바람 그대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내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딱히 일하면서 인맥을 관리하지 않았다. 퇴사한 사람은 그렇게 보내고 따로 연락한적이 없고, 오는 사람은 무미건조하게 맞이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링크드인 같은 헤드헌터가 뿌려대는 이직제안이 아니라 같이 일하던 동료가 '같이 일하지 않을래?'하고 주는 제안은 내가 이렇게 벗어나고 싶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자체로써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런일이 내게도 올까? 했던 적이 있었다. 약 4년 전에 딱 한번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딱 한 번 날 안좋게 평가했던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떄 일을 안하게 될거라는 예감 떄문에 오히려 어중간하게 그만두기보다 그냥 포기하자 싶어서 면접 과정에, 탈락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포기했었다.

그 이후에 또 한번 제안이 왔다. 이번에는 전 직장에서 다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때는 기회를 잡았다. 일을 그만두고 어떤 부분은 나아졌지만 어떤 부분은 뭔가 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여겼기 떄문에 일조의 임시 방편으로 선택했었다. 그리고 현 시점으로 따지면 약 2년하고 3개월이 조금 더 지났다. 반 년의 휴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이 오는 시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크게 양보해서 1년이었다.


인생은 도돌이표라 했던가. 뭔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계속 겪게 되니 내가 이 일을 하기 싫다라는것을 좀 더 확실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사실은 재입사를 하고 원래 내가 하려던, 지원했던 분야로 전향하기 위해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또는 그 회사 안에서 부서를 옮기고자 했다. 나는 남들과는 달라서 그 관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하고싶었던 분야 또한 지금에와서는 아니라는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완전 다른 길로 빠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놀고 싶다, 딱 10년만' 인 셈이지만;;


코로나도 오고, 번아웃도 오고... 내 인생이 정말 한없이 움츠러들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잠시간의 잠복기와 후에 오는 어떤 기복을 느끼면서 그래도 최소 4년은 버티자던 내 다짐조차 지키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본능은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고싶은거지만) 참으로 끈기가 없구나, 원래 이랬나? 안그랬던거 같은데 남들 다 버티는거 왜 나는 못버티나 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다가, 어느날은 아무렇지도 않다가 이런 날들의 반복이 오니까 올해는 거의 아무도 못만나다 시피 하고, 가끔 만나는 몇 안되는 지인이 '뭐 재밌는 일 없었냐'라고 물어보면 너무나 당연히 없어서 할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올 한해는 그저 버티는 시기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했던 '지나간 인연'들이 다시금 내게 연락을 줬다.

"같이 일해볼 생각 없어요? 우리 회사로 올래요?"

최근에 진중하게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진득하게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그냥 5년은 놀고자 했다) 마음을 다잡고 못해도 4년만, 그리고 어차피 일을 쉰다고 내가 뭔가를 쌓아가기엔 인간성이 더무 무쓸모하니,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여가시간을 잘 활용하는게 좋겠다. 그래야 정말 일을 그만 두더라도 건강한 백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최대한 버텨보자 라는 마음을 먹을때 쯤에 왔던 제안이었다.

참 타이밍이 신기하다. 때마침 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버텨야 한다면 이 일 말고 다른일을 하던지, 진짜 해외살이를 경험할 수 있는 해외 파견 기회를 잡아보는 것 둘중에 하나는 확연하게 선택 하는게 좋겠다. 그러면 내년 상반기까지 어떻게는 버텨보고, 요청했던 파견의 결과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 이직을 선택하는게 좋지 않을까? 어떡하지!?'

이직이냐, 파견이냐 어느것 하나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지만 타인의 제안, 그것도 자기 팀 사람을 불러서까지 제안을 하는 정도면 최소한 1차 면접은 통과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나이는 많지만 경력으로만 따지면 나는 그래도 내 직업에서 중상위권이라고(적어도 한국에선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다른건 보고싶지 않다. 그렇게 믿을거니까) 생각했던 연봉까지 챙겨주면서, 내가 하기 싫은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에 또 조직이 젊다. 물론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지금 회사보다 수준이 낮지만, 도전적이고 도전하고싶어하는 그분의 제안을 잘 들어보면 정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딱 작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면...


아쉽게도 양자택일을 선택해야한다면 나에게는 공짜로 해외 파견을 갈 기회를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는것이 문제이기도 했고, 이 일에 대해서 커리어가 더이상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일을 잘 한들... 난 이곳에 이미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떄문에 '도전적인 일'보다는 '도전적인 삶(거주라고 해야하나)'가 지금은 더 경험해보고 싶은것중에 하나였다. 물론 그것마저 쉽게 시작할 수 없는거라면 선택하지 않겠지만, 금전적 손해 없이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를 공짜로 받을 가능성이 이 회사에 여전히 있었기 떄문에... 결국 내게 굴러들어온 기회를 다시 포기하고야 말았다.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지만 제안이 너무 고마웠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것은 내가 일을 잘 했다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런 제안이 너무나 고맙고 내가 허튼짓만 하며 살진 않았구나 하는 일종의 보람같은걸 느낀다.

어쩌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곳은 정말 그 분 말대로 흘러만 간다면 5년 이내에 내게도 한번에 1억 이상의 인센티브를 가져갈 기회가 올 가능성이 큰 것이었으니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수도 있는거니... 그래도 결국 10억 이상이 아니면 '돈'보다는 내 마음이 더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류한 결정이 최선이었으면 한다.


막상 내년 상반기까지도 해외 파견이 답이 없으면(코로나 떄문에도 있고...) 그떄는 자발적으로 이직하려고 할수도 있겠지, 그건 또 그때가서 생각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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