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너무 어렵다. 내가 멋진 글을 쓰는 중이라면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그건 아니니 난감하다.
‘주제가 없어서 그럴 거야.'라며 내 안의 주제를 닥닥 긁어 쓰기 시작한다. 도무지 이야기가 한 문단을 넘지 못한다. 이번엔 '주제에 갇혀 있어서 그런거'라며, 무엇이 되었든 간 쓰자고 마음먹는다.
"밖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라고 우선 한 줄 적는다. 이 문장은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갔던 시시한 사주카페 주인이 말이다. 생년월일을 받아 적은 그는 대뜸 '당신은 글을 쓸 사람이고, 어느 날 글이 써질 것이다.'라고 예언자처럼 말했다. '도대체 제가 무슨 글을 쓰게 되나요?' 나는 되물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사주 아저씨는눅눅한 카페 창 밖을 마치 연기하듯 지긋이 내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밖에는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이처럼 간단하고 평범한 문장으로 글이 시작될거에요"
나는 그 문장을 마법의 주문처럼 가슴에 담고 살았다. 언젠가, 무엇을 쓸지 모르지만 쓰고 싶은 열망만은 분명 품고 있던 고등학생 때부터 생각했다. 매일이 똑같은 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겪으며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 이 문장을 시작으로 응집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아무리 쓰려해도 아무것도 안 써지는 상황이 반복되자 몹시 초조해졌다. 그래서 아직 때가 된 것 같진 않지만, 급한 마음에 그 문장을 꺼냈다.
'밖에는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법처럼 다음 문장이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다면...인물을 넣어볼까?
‘지연이가..'
바로 생각나는 이름을 적었다. 그 후, 비 오는 날의 지연이에게 뭘 시켜보려했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공간부터 손을 대보기로 했다. 우선 비가 오니까, 지연이가 있는 '안'은 어두워야겠지? 키보드를 두들겨, 그녀의 방에 짙은색 나무 가구를 배치했다. 투박한 목제 식탁 위로 갈색구심점에 노란 꽃잎이 얼기 설기 수놓인 뜨개 식탁보가 깔려있으면 어울릴 것 같았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보니 어딘가 낯익은 풍경이다.
아, 그래 맞아. 바로 그 사주카페의 풍경이야.
당시 유행했던 헤이즐넛 향 커피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다. 빈약한 상상력을 자책하며 지금까지 썼던 문장을 다 지웠다. 비와 지연이의 콜라보도 실패다. 한 건 별로 없는 주제에 괴로워졌다. 아니, 몇 십 년을 살았는데 왜 내안에는 길어낼 이야기가 여전히 없지? 너무한 것 아니야? 그런데 이상했다. 난 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하며 자발적으로 괴로워 하는걸까?
대학교 때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친구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는 나와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큰 책장 네 개에 책이 가득하던 나와 달리, 촌구석-그의 표현이다-에서 자란 그는 집에 있는 몇 권의 책을 사춘기 내내 닳도록 읽었다. 농사를 짓던 그의 집에선 내가 듣기에 신선한 희로애락이 펼쳐졌다. 동네 누군가는 비료살 돈을 들고 도망가고, 이웃집은 대출 받아 산 소가 송아지를 낳자, 귀한 마음에 한겨울에 손수 누비옷을 해 입혔다. 할머니가 비상금을 숨겨놓는 꼬질한 베개를 어머니가 모르고 태우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할머니가 불붙은 베개에서 지폐를 건져내고는 주저앉았단 이야기는, 조용한 아파트에서 별일 없이 지내던 우리 가족의 삶을 더욱 고요하게 보이게 했다.
그가 '시골 촌놈'인 친구의 연애 100 일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양복을 갖춰 입고 버스 정류장에 모였을 때, 나는 스쿨버스를 타고 집과 학교만 매일왕복했다. 집에 가며 한강을 건널 때마다 늘 63 빌딩이 보였다. "와 저 건물도 억수로 높은데, 63 빌딩은 도대체 얼마나 높을꼬" 라고, 상경한 사람이 63 빌딩을 보며 했다는 감탄이 -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 농담처럼 전해질 때, 그는 '자기가 처음 서울 왔을 때 정말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며 멋쩍어했다. 타워팰리스를 동경한 그는, 높은 빌딩만 보면 나중에 성공해서 꼭'마천루'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촌출신의 그가 마천루에 오르기 위한 방법이었다. '사회의 부조리'와 '어둠의 카르텔'이란 테마를 좋아한 그의 이야기에는 늘 평범한 사람 - 주부, 말단 공무원 - 이 등장했고, 본인의 사소한 스킬을 사용해 정의를 구현하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20 대초반에서 중반까지 그의 습작은 특별하거나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는 욕망을 변주하며 꾸준히 지치지 않고 써냈다. 졸업 후 여러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고, 이후 소식이 끊긴 지금에도 작가로서 그의 이름은 몇 년에 한 번씩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동안, 나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의 시골을 동경했고, '마천루'와 '성공', '사회 부조리'라는 다소 날것의 단어를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강한 욕망을 시기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글쓰기는 멈췄다.
대신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후벼팔 상처가 없다'를 되뇌었다. 20대에는 정말 상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파조로 읊을만한 상처가 생긴 지금에도 글쓰기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상처는 동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귀찮게 후비는데, 내가 나한테 굳이 왜 그런 짓을 할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라도 쓰면 쓰고 싶은 게 정리되지 않을까 했지만, 여기까지 썼는데도 없는 걸 보니 글쓰기의 동력 찾기는 실패인 것 같다. 아니, 실패가 아니라이쯤 되면 없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없으면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물고기 한 마리못 낚았지만 낚시터를 뜰 줄 모르는 사람같다. 쉽사리 마음을 접질 못한다. '이번에는'이라며 마지막인 것처럼 미끼를 새로 꿰고 던져보지만 낚이는 건 없거나 후지다. 실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낚시가 싫지는 않다. 아주 예전이지만 타닥하며 낚싯줄 끝에 무언가 걸린 느낌과, 팽팽한 줄을 감으며 끌어올린 파닥이는 물고기를 기억하기 때문에.
글쓰기를 떠나지 못하는 나는 낚시꾼을 닮았다. 겉으로는 수면처럼 고요하지만 내면에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한참 들여다본다.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모이다 흩어지다를 반복하고, 기다림 끝에 그 마음을 가장 적확하게 나타내는 표현을 잡아올린다. 월척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손끝을 잔잔하게 간지럽히는 작은 물고기 같은 문장이라도 한두 마디 건지면 그거야말로 하루종일 곱씹는 기쁨이다. 그러니까, 이 기분에 글쓰기는 어쩔 수없는 것이다.
이 정도 썼으니 오늘 새끼손가락만 한 물고기라도 하나 잡은 셈 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