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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Oct 27. 2021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가을이면 교내 합창대회가 있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서서 단체로 하나의 노래를 한달정도 내내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그 행사는 참 재미는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중고등학교 시절 모두, 내가 속한 반이 좋은 노래를 불렀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노래도 지루했고 합창대회는 더더욱 재미가 없었다. 그냥 해야 한다니까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도 합창대회가 있었다. 무슨노래였더라. 어느 계절과 관련된 한국 가곡이었던 것 같다. 한달 내내 지루한 노래를 연습하고 대회 당일 날, 나는 무대의 왼쪽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그날 머리는 하나로 올려묶었고, 당시 유행하던 형광색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었다. 무대에 올라서서 노래가 시작되기 전, 반주자 친구의 반주가 시작되는 그 순간. 내 마음을 관통하는 어떤 감정이 있었다. 


"마지막이구나."


이 노래를 부르는 일도, 내가 교복을 입고 단체 중의 한명이 되어 무대에 올라서는 것도, 저 앞에서 소근대고 서로를 툭툭치며 산만하게 다른반의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저 아이들의 모습도. 오늘이 마지막임을 알았다.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단체활동이구나. 이제 각자 수험생이 되어 1년간 시들어가며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모두 흩어지겠지. 그 생각이 찌르르 지나가며 나는 조금 애잔한 마음이 되었다.


+++


그렇게, 살다보면 어떤 한 시절이 내게서 떠나가는 순간을 목격하고 실감하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생각한다. 


'이 순간을 기억해. 이젠 다시 오지 않아.'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일 때도 있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순간일 때도 있다. 좋은 시절이었는데 엉망이 되어 떠나보내야 할 때도 있고, 그저그랬는데 마지막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날도 있다. 그 모든 다양한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떠나보내고 기억하는지에 따라 내 삶을 구성하는 모자이크의 색감과 형태가 달라졌다.


+++


최근, 나는 또 한 시절을 떠나보냈다. 나약한 내가 어른으로 사느라 지칠때, 그 방법을 잘 찾지 못하는 것 같을 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나만의 장소를 이제는 떠나와야 함을 깨달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원히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그곳의 문을 닫았다.


열일곱살, 합창대회의 무대에 서 있던 나는 마음속에 찌르르 바람이 불던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그 이후 내가 경험하고 만나는 세상의 크기가 참으로 크고 넓어서 마지막 합창대회따위는 금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내가 이 시절을 떠나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 앞에 다가올 또 새로운 시절은 얼마나 남아 있는걸까. 나는 잘 떠날 수 있을까.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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