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냉장고를 비우며
냉장고 문이 열려있음을 확인한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주말,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생 때 태어난 첫째 조카가 벌써 스무 살이 되어 군에 입대했습니다.
벌써 첫 휴가를 나왔네요.
부모님을 모시고 김해를 갔습니다.
오랜만에 매형과 누나 조카들을 만났습니다.
첫째 조카는 어엿한 군인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필승! 김일병님께 경례를 해봅니다.
해군으로 입대했고요. 현재 평택에서 배를 타고 있는 수병입니다.
육군이었던 저는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건넨 질문들은 모두 누나가 대답을 합니다.
함께 동반 입대를 한 줄 알았습니다.
옆에서 매형이 누나는 밀덕이라고 합니다. 밀덕!?
아하! 밀리터리 덕후 카페랍니다.
새삼 K-장병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둘째 조카는 벌써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하기 싫은 공부에 힘들어하지만 특유의 해맑음을 잃지 않아 다행입니다.
맛있는 저녁도 먹고 함께 시간도 보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조카들이 건강하게 갈 길을 찾아가는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역시 우리 집안에 나만 잘하면 되는 것임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1박 2일은 금방 지났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대구로 돌아옵니다.
부모님을 내려드리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어라!? 왜 쉽게 당겨지지?
아뿔싸.. 냉장고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순간 몇 초간 잠시 얼어붙었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몇 개 반찬통을 열어봅니다.
점심때 먹은 메밀국수가 역류할 뻔했습니다.
최근 어머니가 반찬을 해주셨습니다.
몸도 건강하지 않으신데, 무더운 날씨에 고생 고생하며 담아주셨습니다.
급히 제미니에게 물어봅니다. 건강을 위해선 다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정말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채소, 나물, 버섯, 양념 된 고기, 짜장, 마늘종 반찬통이 끝없이 나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김치는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고추장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제미니는 조심 또 조심하라고 합니다.
냉장고를 싹 비우고 대청소를 했습니다.
폭포수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상한 반찬들, 의심스러운 반찬들을 모두 한 통으로 모았습니다. 허탈한 한숨이 나왔습니다.
복도를 걸어갈 때,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 때, 싹 비우고 돌아설 때
내 마음이 턱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아직 싱크대는 설거지 그릇들이 태산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져버린 것 같아 속상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시간이 지나도 반찬에 집착되어 있는 날 봅니다.
스스로 자책하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돌아보니 집을 나서기 직전 매우 바빴습니다.
부랴부랴 씻고 머리를 말리고 양손 가득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분명 가스불도 보고 환풍도 점검하고 확인을 했는데
냉장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다 서둘러서 생긴 일입니다.
정리정돈이 부족해 생긴 일입니다.
뼈아픈 경험으로 또 하나의 큰 공부를 합니다.
나의 행동에 잘 깨어있겠습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모두 잘된 일로 삼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는 여전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냉장고는 덩그러니 비워졌습니다.
반성하며 소식하는 9월을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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