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한 대가 앵하는 엔진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시골 한 도로를 달리고 있다. 엄마는 안쪽 조그만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초등학교 2학년인 나를 날개 같은 양손으로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턱을 올리며 머리를 뒤로 저치니, 매일 같이 고된 논밭 일과 집안일로 힘겨워하면서도 나와 누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존재가 보인다.
집에서 학교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나를 종종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아마 작은 내가 차가 쌩쌩 지나가는 도로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게 못내 걱정이 됐나 보다. 물론 나 혼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좋았다.
오늘 집에 돌아올 때도 엄마가 어떤 요리를 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남매에게 맛난 간식을 자주 준비해 주곤 했다. 탁탁 튀는 기름에 먹음직스럽게 구운 닭고기, 윤기 도는 떡이 가득 든 떡볶이는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누나와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하나라도 더 먹겠다는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다 누나가 “이거 너 먹어.”라고 말하며 마지막 남은 닭고기를 양보할 때에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음을 깨닫는다. 학교에서 돌아와 누나가 보이지 않으면 왠지 허전함을 느낀다. 그러나 자라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이 싸우는 날이 늘어갔고, 누나와 나도 친구나 학업 문제에서 순탄치 않다 보니 각자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렇게 서로의 사이에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선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골 특유의 보수적인 면 때문에 거리감이 있었다. 농부의 일이 맞지 않아 힘들었는지 술을 잘 못 마셨음에도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돌았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여유롭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순간이 거의 없었다. 말을 하더라도 필요한 말만 했기에 아빠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다행히 엄마가 부족할 수 있는 애정을 채워주었다. 엄마를 안을 때면, 온 세상이 날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엔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신마저 나의 친구였다.
완벽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조화를 이루었기에 문제없어 보였고, 삶은 구름 흘러가듯 평온하게 이어졌기에 예측도 가능했다. 집 마당에서 보이는 도로 위 자동차의 숫자로 세상의 변화가 느껴졌을 뿐, 농장 옆 내 집은 나에게 아직 푸근했고 멀리 보이는 푸른 들판은 언제나 맑고 고요했다.
앞으로도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큰 무리 없이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때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세상이 지금보다도 희망차 보였다. 당시 품었던 그 긍정적인 마음이 그리울 만큼 소중하다고 느낀다.
세상 안내하는 말, 가족
눈 아닌 가슴으로
세상 바라보았던 유년 시절
나의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세상에 내가 손 내밀던 그때
세상을 대표해 그 손 잡아주었던 가족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웃을 수도 있었다.
울을 수도 있었다.
지금보다 추웠던 그 시절
나에겐 가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