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품은 음식
일본을 여행하며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뭐냐고 한다면, 여러 개를 꼽는다.
그 중에서 꼭 들어가는 건 '야키니쿠'다.
야키니쿠는 이름 그대로, 구운 고기라는 뜻. Korea BBQ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할까.
생고기 혹은 양념된 고기를 그대로 손님에게 내고, 손님이 직접 불판에 구워먹는 형태다.
야키니쿠가 맛있었던 이유는, 내게 익숙한 음식이라서다. 한국인이라면 집에서, 또 음식점에서 다양한 고기를 구워먹는다. 야키니쿠 집에 쌈장은 없지만, 익숙한 간장 양념 맛이 더해진 고기 구이 맛이 싫을 리가 없다. 여기에 쌀밥을 더하고, 대부분 야키니쿠 집에 있는 김치까지(비록 그 맛은 한국과 다르지만) 더한다면 한국에서 먹는 맛과 흡사하다.
"김치! 김치 있어예! 집에서 만든 김치 있어예! 이카이노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 손님 할머니가 만든 것보다 맛있는 김치! 오이시데스, 오이시!" 그날 저녁, 선자는 김치 항아리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식당은 기차역과 나란히 뻗은 짧은 골목에서 가장 큰 가게였다. 조선 갈빗집인 것은 분명했다. 불에 구운 고기 냄새가 두 구역이 떨어진 곳까지 풍겼다. (...)
"조리사가 두 명 오는데, 그 사람들은 김치와 반찬은 못 만들어요. 그건 아무나 못하죠. 손님들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절임을 먹고 싶어 해요. 양념된 고기는 바보라도 구울 수 있지만, 손님들이 왕처럼 먹는 기분이 들게 하려면 반찬이 걸게 나가야 해요. 안 그래요?"
<파친코>, 이민진
<파친코>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선자는 야키니쿠 집에 김치를 담그는 일을 시작한다. 대사에 나오는 '이카이노'는 오사카에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다양한 사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조선인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타국으로 넘어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음식점도 그 대안 중 하나였다. 물론 초창기에는 야키니쿠 집이 일본에서 메인으로 올라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야키니쿠는 '호루몬'이라는 표현과 역사를 함께한다.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긴 시간 동안 육식 문화가 없었던 일본은 내장 부위를 먹지 않았고, 전부 버렸다. 먹을 것이 궁한 조선인들은 그 내장을 주워서 본토에서 그랬던 것처럼 불판에 구워 먹었다. 조선인이 야키니쿠 집을 차린 뒤에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호루몬', 내장들을 중심으로 팔았다. 조선인들이 쓰레기를 구워 먹는 풍경을 질색하던 일본인들도 시간이 지나서는 그 맛에 빠져들었다.
야키니쿠는 한동안 '조선요릿집'이라는 뜻과 같았고, 재일조선일을 주인공으로 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긴 땅굴>에서도 '조선요릿집이 있습니다. 야키니쿠 어떠십니까?'와 같은 대사와 함께 주인공이 일부러 그 가게를 피하는 묘사가 나온다. 야키니쿠는 단순히 '구운 고기'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고 지금도 김치를 포함해 냉면이나 김치볶음밥, 육회 등 다양한 한국음식이 함께 메뉴에 올라 있다. 도쿄 아카사카에는 한식당이 많은데, 야키니쿠 집의 비중이 높기도 하다.
야키니쿠 집에서 파는 메뉴들은 집마다 살짝 다르지만, 갈비/안창/우설/내장(호르몬) 이 4개는 거의 고정이라고 봐도 좋다. 삼겹살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 4개 부위가 주류를 이룬다. 야키니쿠의 시작이었던 대창, 곱창과 같은 내장,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 부위인 '갈비'가 여전히 메인 메뉴로 꼽힌다.
<고독한 미식가>에도 야키니쿠 집이 나오는데(나는 마치 인간 화력 발전소'라는 표현이 나름 바이럴을 탄 회차다), 여기서 '곱창'을 한국 발음 그대로 '곱창'이라고 부르는 것과 '김치를 잊고 있었다'며 고기/밥과 함께 열심히 김치를 먹는 장면도 재미 요소다.
실제로 야키니쿠 집을 방문하면, 주인이 한국인이거나 재일조선인의 후손인 경우가 꽤 많다. 그동안의 역사도 있겠지만,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 만큼 최신 감각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 한국인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키니쿠 집의 시초는 작은 음식점들이지만, 최근 만들어진 곳들은 비교적 규모가 큰 곳이 많고 가족이 다같이 먹거나 회식에 적합하게 4인용 테이블이 많기도 하다. 특히 예약이 필수인 곳도 있다 보니, 맘에 드는 곳을 간다면 사전에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위의 역사를 제외하고, '일본에서 갈 수 있는 수많은 음식점 중에서 야키니쿠 집을 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처음 말한 것처럼 익숙한 맛이라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있겠다. 야키니쿠 집은 저렴하게 먹어도 인당 3만원부터 시작하고, 5-6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한 끼 가격으로는 당연히 높은 수준이지만, 고기의 질을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 소고기를 먹는 것과 비교하면 '같은 양을 한국에서 먹었다면 더 비쌌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접시당 1천엔 내외로 보통 소량씩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부위를 먹고 싶을 때 가격적으로 적합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 외의 특징이 있다면 '우설'을 먹기 좋다는 점인데, 국내에서도 우설을 먹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접근하기는 어려운 메뉴다 보니 일본에서 야키니쿠 집을 간다면 우설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취향에 맞게 보통은 간장 등으로 양념한 타래(소스)가 발려져서 나오거나 찍어먹을 수 있는데, 익숙한 고기 구이를 살짝 다르게 먹는 맛도 있다.
일본에 음식을 먹으러 간다고 하면 라멘이나 초밥, 돈가스나 야키토리와 같은 음식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나는 한 번쯤은 야키니쿠 집을 가는 걸 좋아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직관적인 맛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도 풍성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그 땅에 맞게 변한 음식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는 한국 요소를 관찰하고 '이 집은 이런 한국 음식을 파네'라며 메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