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테마파크는 22년 11월에 개관한 곳으로, 아이치현의 엑스포 공원을 활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은 '지브리 파크'라고 통칭. 도쿄에도 지브리 미술관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만, 지브리를 주제로 한 공간 중에선 이곳이 제일 크다. 계획한 공간이 아직 다 오픈한 것도 아니고, 현재는 3개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나는 이번에 가장 메인인 '지브리 대창고'만 방문했다. 오로지 예약만을 통해 방문할 수 있는데, 경쟁이 치열해서 오후 시간으로 예약이 되기도 했고 지브리 대창고만 보아도 시간이 많이 흐른다는 후기를 봤기 때문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https://ghibli-park.jp/en/
입장권은 구역마다 다르게 팔고 있는데 지브리 대창고는 평일/성인 기준 2,000엔, 주말은 2,500엔.
청춘의 언덕이나 돈도코숲은 각각 1,000엔씩 별도로 구매할 수 있다. 방문해 보니 그렇게 비싼 가격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물론 어차피 기념품 샵에서 그 이상을 구매하게 된다). 지브리 파크는 기본적으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여러 애니메이션의 공간들 중 일부, 등장인물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공간을 둘러보는 과정이다. 물론 '지브리 파크'인 만큼 지브리 애니메이션 전체를 기록하는 느낌도 있다. 이래저래 '지브리'라는, 하나의 애니메이션보다 더 큰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곳.
나같은 경우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는 설정이나 애니메이션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충분히 즐거웠던 이유도 '지브리 전체'라는 세계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든 애니메이션을 관통하는 '지브리만의 느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이 만들어 낸 세계를 눈 앞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독특한 경험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경험은, 지브리의 모든 애니메이션들의 포스터를 양 벽에 걸어둔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거장의 자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지브리 파크는 나고야에서 넉넉잡아 1시간이면 이동 가능한데, 버스로 이동하는 나가시마 스파랜드와 달리 전철로 접근이 가능하다. 단 환승이 필수인데, 지브리 파크가 있는 역이 '리니모' 선으로만 갈 수 있기 때문. 보통 히가시야마선을 이용해 후지가오카 역을 갔다가 그곳에서 환승하는게 보편적이다. 아무래도 시 외곽이기 때문에 전철은 비교적 널널한 편이고, 열차의 배차 간격이 엄청 긴 것도 아니라서 가기에 큰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가는 길이 보통 지상철이기 때문에, 일본의 느낌을 보며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리니모 선은 꽤 귀여운 형태인데, 어떤 열차는 지브리풍으로 디자인되어있기도 해서 후지가오카 역에서 리니모 선으로 환승할 때 쯤엔 이미 지브리 파크를 간다는 기분이 확실하게 나서 들뜨게 된다.
나는 2시가 좀 넘은 시각에 방문했다. 예약된 시간이 그쯤이었기 때문인데, 5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3시간 정도 관람한 셈이다. 이는 대창고를 둘러본다는 가정으로 살짝 부족한 정도인데, 대창고 공간 자체가 엄청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볼만한 것들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앙 전시실은 웨이팅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중앙 전시실의 대표는 '가오나시'와 함께 찍을 수 있는 공간인데, 방문했을 때 이미 100명은 훌쩍 넘어보이는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최소 1시간 반은 웨이팅해야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곳은 일찌감치 포기했음에도 3시간은 살짝 빠듯한 정도였다.
지브리 팬이라면, 사진을 더 많이 찍는다면, 더 꼼꼼히 본다고 하면 가오나시와의 사진을 포기하더라도 4시간은 걸릴 수 있다. 즉 줄을 서서 모든 공간을 둘러본다면 '대창고'만으로도 6시간은 걸리는 셈이니, 다른 공간을 추가로 예약해서 가려면 정말 아침 일찍부터 와서 하루 종일 둘러봐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차피 내가 방문했을 당시엔 입장하자마자 엄청 거센 비가 내려와서 대창고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청춘의 언덕이나 돈도코 숲을 방문하기도 까다로워 보였다. 내부엔 작은 영화관도 있는데, 과거 지브리 박물관에서만 독점 판매하던 애니메이션 10개를 공개한다고 한다. 영상은 월마다 다르고 내가 본 건 23년 7월, "House Hunting". 대사는 거의 없고 대부분 특정 '소리'에 집중한 애니메이션인데, 꽤 흥미로웠다.
지브리 파크에서 중앙 전시실보다 사람이 몰리는 곳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기념품 샵이다. 따로 줄을 서서 들어가지는 않는데, 정말 조금 움직일 때마다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정도로 와글와글하다. 이곳도 사진을 촬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불가인 곳이 꽤 많다. 사유는 잘 모르겠는데, 경험상 전체 공간의 2/5 정도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던 것 같다. 기념품 샵은 정말 다양한 기념품이 공간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비싸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이후 도쿄에서 방문한 '해리포터 스튜디오'의 가격 정책을 생각하면 아주 합리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저렴한 것들도 꽤 있었다.
대창고에서 유일하게 음식을 파는 공간은 샵 앞에 있는데, 팥을 중간에 넣은 샌드위치와 간단한 음료다. 나고야에서 유명한 '오구라 토스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일반 식빵은 아니고 카스테라에 가까운 빵 사이에 간 팥 혹은 통팥을 넣은 것. 예상한 맛이기도 하지만 꽤 먹을만 하다. 함께 먹은 병우유는 병을 별도로 반납해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공간에 소소하게 줄을 서는데, 아무래도 내게 가장 의미가 깊었던 곳 중 하나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기계로봇이 있는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 DVD가 있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브리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때였지만, 그 기묘한 분위기에 끌렸었더랬다.
나고야에서 돌아다닐 땐 관광객 자체가 많다는 생각을 할 일이 적은데, 이곳엔 정말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개관한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그런지 놀러온 일본인들도 꽤 있어 보였다.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도 많았는데, 이미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수많은 어린이들에게도 힘이 있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 자체가 이미 '지브리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는데, 어린 시절과 어린 시절 마주했던 지브리의 추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조금은 몽환적이고, 또 환상적인, 현실적이면서도 조금은 암울한 것 같은데 또 희망차기도 한, 독특하고 기괴한 설정인데도 묘하게 끌리게 되는 지브리 세계관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랄까.
물론 이 공간 자체는 어른의 사정(...)에 따라 움직이므로, 역시 5시에 맞추어 모든 관람객은 얄짤없이 나가야 한다(단, 굿즈 샵은 조금 더 사정을 봐주는 했다). 나가서 역까지 가는 곳에 있는 샵을 하나 더 방문했다. 이 곳에서도 꽤 괜찮은 지브리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지브리 파크는 아무래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접근성이 좋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엑스포 기념 공원이라는 위치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포 공원 특성상 널찍한 부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휑한 느낌, 멀리 보이는 관람차에 독특한 지브리의 색채가 묻어나는 공간은 꽤나 잘 어울린다. '지브리의 세계로 들어 간다'는 기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간도, 그 느낌도 적당한 편이다. 시간이 많다면, 또 여유가 있다면 다른 공간까지 둘러볼 수 있겠으나, 대창고 공간 하나만 둘러보아도 몇 시간이 흐를 수 있는 곳. 단점이 있다면 너무 많은 사람, 그리고 앉을 공간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여러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공간 대비 직원이 많다. 이건 장점도 있지만 지브리파크에선 때로 몰입에 조금 방해가 된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래는 추가로 보태는 공간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