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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무사 Oct 26. 2020

임금체불 사건에서 3인의 속마음

동상이몽의 향연

다른 작가들의 브런치 글을 읽어 가던 우연히 임금체불 사건 때문에 힘들어하는 근로감독관의 글을 읽었다. 글을 읽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조금은 따분하고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미리 사죄드린다.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지 못하면 두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임금을 달라'라고 민사소송을 통해 청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민사소송을 하자니 내가 받아야 할 금액이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변호사, 인지대, 송달료 등 비용이 부담된다. 내일 당장 밥 사 먹을 돈이 없는데 판결이 금방 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두번째 방법으로 해결을 도모한다. 노동부에 진정 또는 고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이 방법을 통해서는 내가 못 받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노동부에 신고하고 돈을 받았는데?"라는 경험에 근거한 생각에 의아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강조한다. 원칙적으로 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으로는 임금을 받을 수 없는게 맞다. 노동부는 '민사법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등을 조사하는 '수사기관'이다. 근로감독관은 '판사나 집행관'이 아니고 '특별사법경찰'이다. 그들의 존재 목적은 '채권의 확정과 실현'이 아니라 '범죄사실의 수사'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오해로 3인의 당사자, 즉 근로자, 사용자, 근로감독관의 불행이 시작된다.


노동부에 신고한 근로자는 기대한다. '별도의 비용 없이 근로감독관이 내가 받아야 될 돈을 민사소송보다 훨씬 빨리 받아줄 것'이라고. 사건을 배당받은 근로감독관은 고민한다. '체불액이 얼마지? 기소할 수 있을까?'라고. 노동부의 출석요구를 받은 사업주는 분노한다. '바빠 죽겠는데 돈 좀 못 갚은 거 가지고 왜 오라 가라야'라고.

동일한 사건을 대하는 3인의 속마음이 시작부터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괴롭다. 근로자는 마땅히 줘야 할 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주가 얄밉고, 내 돈을 빨리 받아주지 않는 근로감독관이 게을러 보인다. 사업주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돈 갚아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관공서에 신고한 근로자가 야속하고, 돈 좀 못 갚은 거 가지고 죄인 취급하는 근로감독관이 과하게 느껴진다. 근로감독관은 처벌을 위한 진술과 증거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언제 돈을 받을 수 있냐며 닦달만 하는 근로자가 당황스럽고, 형사절차에 피의자 신분으로 임하면서도 큰소리치는 사업주의 태도가 황당하다.


이들의 속마음을 변화시켜 3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해법이 나에겐 없다. 해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두가 불행한, 제로썸 게임만도 못한 상황에 힘들어하는 근로감독관의 글이 안타까워  알리고 싶은 점이 있을 뿐이다.


근로자에게 알린다. 대한민국 법제도에서 사업주가 임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사를 통해 확정판결을 받고 강제집행하는 것뿐이다. 노동부에 제기하는 진정 또는 고소는 처벌을 통해 사업주의 지급을 유도하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근로감독관의 역할은 임금체불이라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에 대해 처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지 임금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임금 채권을 확정하고 집행까지 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사업주에게 알린다. 임금 체불은 거래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민사상 채무불이행일 뿐인 것이 아니라 범죄다. 대부분의 사업주가 그저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았을 뿐 많은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가는 일반 국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자에게 노동법은 특별한 책임을 부과한다. 임금체불이 범죄임을 잊지 말고 노동부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자.


근로감독관에게 알린다. 노동사건의 당사자는 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의 요구를 답답하게 여기지만 말고 제도의 취지와 처리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자. 각자의 어려운 사정으로 잠시 흥분한 것일 뿐 성실하게 일해 생계를 이어가는 근로자와 자신만의 사업체를 유지하는 사업주는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지적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오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법률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전문성을 배양하자. 근로자는 본인이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사업주는 자신이 책임져야 될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 권리가 있다.


학교에서 풀었던 시험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나와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에 해답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 안다. 래서인지 가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답 있는 문제만 던져줬던 학창 시절 어른들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한다. 조금씩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 굳이 답이라고 할 만한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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