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단발 곱슬머리에 페도라를 쓴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저씨가 오늘은 기차 옆 좌석이다.
“오늘은 아가씨가 내 옆 짝꿍이네.”
말을 걸어온다. 어디까지 가냐, 몇 살이냐, 뭐하러 가냐, 대학 졸업하면 뭐할거냐... 기차를 타면 어른들이 묻는 질문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잘 나가던 자신의 시절을 풍미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잘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명함이나 스마트폰으로)
그냥 정말 말동무로 이 말 저말 하는 사람까지.
오늘 수원까지 가시는 내 옆좌석 아저씨는 화가라고 하셨다. 미대를 나와 홍콩에서 오랫동안 사시며 가르치는 일을 했단다.
그린 그림도 보여주셨다. 통일에 관련된 그림이 많았다.
“지금도 그럼 그림 그리세요?”
방금 전까지와 달리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도 그림은 그린다고 하셨다. 서울이고 어디고 다니시며 벽화를 그리신다고.
하루하루 벌어산다고, 작가, 화가 남편 만나지 말라고.
수원역이다. 30분 남짓한 만남과 이야기. 그리고 인사. 내리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중에 내가 티비 나오거든 아는 척하라고. 내 얼굴 기억해두라구!”
통로 쪽에 앉은 나에게 자리를 창가 쪽으로 양보하겠다던 아저씨.
더 좋은 풍경을 보도록 자리를 바꿔주겠다던, 지금은 벽화를 그리는, 후에 티비에 나올지도 모르는 아저씨.
꿈들이 살아간다. 비록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