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5.
‘사람은 추억으로 먹고 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철저한 추억팔이 소녀인 나에겐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곧 마음속의 추억이다. 회사에서 상사의 잔소리에, 거래처의 행동에 화가 끓어오를 때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한 덩어리의 달달한 추억을 사탕처럼 녹여먹는다. 그럼 현실의 텁텁하고 씁쓸한 맛을 중화시킬 수 있다. 그 달콤한 사탕은 친구들과 깔깔 거리며 돌아다닌 여행지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혼자 간 여행지에서 넋을 놓고 보던 풍경 속 공기와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6월 15일 오늘, 뜨거운 여름날의 햇볕처럼 강렬한 사탕을 그대들과 함께 만들었다.
6월 15일 토요일, 초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해가 진 후에는 그래도 선선해지는 바람을 기대하며 그대들의 야외 페스티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하늘은 변덕스러운 법, 지난주의 부산 콘서트에 이어 또 비소식을 전하며 그대들을 만날 날만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페스티벌을 이틀 앞둔 날까지도 저마다 날씨 예보를 확인하며, 비가 올지, 온다면 얼마나 올지를 서로 전하기 바빴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내가 상상했던 여름날의 축제 그림은 나올 수 없게 돼서 속상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축제를 이틀 앞둔 목요일, 캡틴의 유튜브 녹화장에서 “토요일에 만나~”라고 인사하는 캡틴의 말에 속상함은 저 멀리 밀려났다. 캡틴의 말 한마디는 위대했다. 도와주지 않는 날씨를 따라 꾸물거리던 내 마음도 다시 맑음을 되찾았다. 우리가 만나서 함께 웃고 즐기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그걸 잊은 채 비 소식으로 늘어난 짐을 보며 꿍얼거리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대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상상하면, 나는 내게 있던 흑빛의 어두운 기운을 떨쳐낸다. 그 상상이 나에게 알록달록 색을 불어넣으며, 내 기분을 통통 튀어 오르게 만든다.
드디어 그대들을 만나는 토요일, 페스티벌장까지 가는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우비를 꺼내 입으며 그래도 장화 개시한 보람이 있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낄낄거렸다. 잔뜩 물기를 머금어 축축하고 무거워진 공기도, 그대들을 볼 생각에 방방 떠오르는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한바탕 굵은 비가 쏟아지더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축축한 공기만 남은 채 해가 떠올랐다. 구름 뒤에서 얼굴을 내비친 해는 귀환 소식을 쩌렁쩌렁 알리듯이 뜨겁게도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우리는 그대들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스탠딩 구역에서 그대들과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그대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피크닉 구역에서 함께 둘러앉은 동행들과 여름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그대들과 함께 나눌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긴 기다림 끝에 이번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인 그대들의 순서가 다가왔다. 그대들이 나오기 전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에도 우리는 빈 무대를 떼창으로 가득 채웠다. 콘서트에서 늘 하는 셋 리스트였다.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부르던 그런 노래들이었다. 어쩌면 질릴 만큼 듣고 부른 노래다. 하지만 그대들이 그 노래들을 무대에 다시 펼치는 순간, 그 노래들은 새로운 노래가 된다. 같은 무대를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냐고 할 누군가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를 만큼, 그대들의 모든 무대는 날 벅차오르게 한다. 특히나 오늘은 실내의 공연장을 벗어나 여름날의 해 질 녘을 그대들과 함께 보내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런 여름날 난지의 배경이 오늘 우리의 순간을 더욱 환상적이게 만들었다.
그런 여름날의 노을이 그대들에게도 특별했던 걸까.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어느 무대보다 가까이서 만나는 우리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주 부산의 기억과 함께 오늘 그대들의 기분과 생각을 미주알고주알 말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팬들을 향해 애교와 하트를 잔뜩 날리는 캡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슬로건을 보고 성큼 팬들을 향해 다가왔다 부끄러워하는 둘째,
“저 오늘 진짜 행복해요”라는 말과 함께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던 셋째,
해가 지니까 파란 하늘이 땅으로 내려왔다며 하늘빛으로 물든 난지를 표현하던 넷째,
그리고 우리의 영원을 말하는 막내까지.
“우리도 행복해요!”라고 셋째의 말에 닿지 않을 대답을 외쳤고, 그것은 우리의 진심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대들의 얼굴에 연신 걸리는 웃음과 미소를 놓치기 싫어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무대 장치인 워터캐논의 물세례를 함께 맞고, 추억 속의 무대처럼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노는 장난기 어린 모습이 좋았다. 우리에게 예전처럼 장난기 가득 담아 물을 뿌려대다가도 이내 미안하단 듯이 꾸벅 인사하는 그대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6월 15일, 그대들과 난지에서 함께 뛰어놀며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짙은 행복은 오랜 여운이 됐다. 장마가 지나가며 습기를 잔뜩 남긴 요즘의 날씨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축축한 공기와 뜨거운 햇빛을 견뎌낸 후, 그대들을 만나 행복으로 가득 채웠던 그 하루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렇게 이 여운이 오래도록 내게 머물렀으면 좋겠어. 이 여운을 사탕처럼 오래 머금고선, 천천히, 오래오래 녹이며 달콤함에 취해 있고 싶어. 오늘 그대들과 만든 이 추억은 날 감싸 안는 여운이 되어 현실의 풍파를 견디게 해 줄 거야. 그러니까 짙고 깊은 여운으로 내 곁에 오래 남아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