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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취향의 보석상자

모녀의 취향 디스커버리, 그 마지막 에피소드.

by 엠마한

어린 시절부터 옷이든 구두이든 몸에 걸치는 모든 것에 대한 안목의 바탕이 된 존재가 있다면 단연코 안 여사, 나의 엄마다. 안 여사의 화장대 서랍 안에는 특히 작고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다 손바닥 만한 여러 개의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그 작은 상자를 하나씩 열어서 구경하는 즐거운 회동(?)을 나는 어린 동생들과 종종 벌였다. 물론 약간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무섭게 혼을 낸다거나 했던 기억도 없었던 걸 보면 우리의 호기심, 특히 나와 여동생들이 갖고 있는 그런 아름다운 것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을 엄마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이구, 언니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이렇게 다 꺼내놨어..?!”


라는 식으로 가볍게 타박을 주긴 했지만, 구경 금지령 같은 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항상 엄마의 물건을 그대로 잘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다음에 또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린 눈으로 보아도 그것들은 예쁘지만 지금 내가 걸치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대여섯 살일 적에도 난 안 여사의 머리핀이며 장신구들이 예쁜 걸 알았지만 언젠가는 내 취향으로 가득한 나만의 보석상자를 갖겠다고 생각했다.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된 나의 취향을 반영한 작은 컬렉션은 물론, 그 최초의 씨앗은 플라스틱 방울이 달린 머리끈이나 하늘색의 왕 리본이 달린 머리띠 같이 안 여사가 사주거나 내어 준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엄마에게 받은 것들을 ‘물려준’ 거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고 물려받은 귀중품을 제대로 간수할만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는 그와 비슷한 느낌의 알록달록하고 디테일이 풍부한(a.k.a. 화려한) 쪽으로도 뻗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갈래의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엔 실용적이고 몸에 늘 항상 지니고 다녀도 좋을 법한 디자인, 그러면서도 창작자의 고유한 개성이 담긴 디자인을 고르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전체 룩(Look)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구석이 뭔가 하나는 있어야만 해소되는 나름의 이 감각적 불편함은 과장을 좀 섞어서 ‘그냥 평범한 것은 안된다’는 안 여사의, 그 불변의 패션 DNA로부터 기인한다고 느낀다. 이런 식의 에세이를 일 년 가까이 써왔다는 것 자체로도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방면으로 평범하긴 그른 것이다.


한 때, 내 취향이 안 여사와는 정반대의 경향으로 발전한 건 어느 정도 그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이 일었던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줄기차게 무채색만 입었던 엄마가 대학생이 되자 옷장을 온갖 색감을 한 자리에 모아둔 팔레트처럼 채웠듯이.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보면 단지 장신구뿐만 아니라 옷이나 신발을 고를 때에도 어떤 건 안 여사 것을 보고 내가 따라서 산 건지, 아님 내 것을 보고 엄마가 따라서 산 건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것들이 있다. 그만큼 이제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가 되었다. 요즘은, 아마도 지난 1년 간 진행해 온 이 ‘엄마의 옷장’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전혀 내 취향은 아닐 거 같다고 생각했던 안 여사의 옷이나 장신구조차 저마다의 미와 쓰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건 내가 그동안 충분한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전에 ‘할머니 스타일’ 같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진주 목걸이를 내가 좋아하는 옷들과 한 번 매치해보았다.

‘보라색 러버’인 안 여사의 취향을 정확히 따른 멀티 컬러 진주 비드. 저렇게 색 조합을 잘 뽑아내려면 한 가지 색깔로 만 꾀어 목걸이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이 좀 크고, 무겁고, 잠금 장식은 예스럽다. 하지만 이 진주 목걸이를 어떤 옷과 함께 입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조합은 면 티셔츠에 플레어스커트. 여기에 플랫폼 샌들을 신으면 올여름 꽤 잘 입고 다녔던 출근룩이 된다. 티셔츠 컬러만 스커트와 따로 놀지 않게 잘 고르면 되는, 의외로 쉬운 이 코디에 나는 진주 목걸이와 볼캡을 같이 매치하는 것으로 캐주얼한 노선을 타기로 한다. 티셔츠 색은 진주알 중 하나와 같은 걸 고르면 된다. 마침 연보라색 티셔츠가 있어 그 위에 오늘의 메인 아이템을 올려 사진 한 번 찍어보았다.


‘됐어, 느낌 왔어, 오늘 촬영 빨리 끝나겠어!’



셀프 칭찬을 하느라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붙잡고 나니 일 년을 달려온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포스팅이 적어도 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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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무늬 스커트는 싱가포르에 사는 사촌 이모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명동의 백화점에서 선물로 사주신 옷이다. 좋은 날 입으려고 아껴두다가 이제 사이즈가 맞을까 맞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경계에 이르게 되자, 자주 손이 가는 곳에 꺼내 두고 입을 때마다 ‘오늘이 좋은 날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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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톤 염색을 해봤는데 마침 목걸이도 알알이 번갈아가며 색이 다르니 왠지 더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셀린(CELINE)의 유행 덕분에 이 더운 여름에 볼캡을 정말 아무 옷에나 매치해도 돼서 참 좋다.


다음 포스팅은 본 연재를 마무리하는 후기 겸 결산 혹은 정산-잠깐, 셈해서 값을 치를 일이 있었던가?-의 글을 쓰려고 한다. 여담인데, 옷 살 돈을 아껴서 주식 사고 청약도 넣어야 하는데 일 년 간 새 옷을 사지 않고 아꼈던 그 돈이 다 거기로 간 것 같진 않다. (차라리 적금을 하나 더 들었어야 하나 싶고..!?) 그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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