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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한 Aug 01. 2021

24. 취향의 보석상자

모녀의 취향 디스커버리, 그 마지막 에피소드.

  어린 시절부터 옷이든 구두이든 몸에 걸치는 모든 것에 대한 안목의 바탕이 된 존재가 있다면 단연코 안 여사, 나의 엄마다. 안 여사의 화장대 서랍 안에는 특히 작고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다 손바닥 만한 여러 개의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그 작은 상자를 하나씩 열어서 구경하는 즐거운 회동(?)을 나는 어린 동생들과 종종 벌였다. 물론 약간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무섭게 혼을 낸다거나 했던 기억도 없었던 걸 보면 우리의 호기심, 특히 나와 여동생들이 갖고 있는 그런 아름다운 것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을 엄마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이구, 언니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이렇게 다 꺼내놨어..?!”


라는 식으로 가볍게 타박을 주긴 했지만, 구경 금지령 같은 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항상 엄마의 물건을 그대로 잘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다음에 또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린 눈으로 보아도 그것들은 예쁘지만 지금 내가 걸치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대여섯 살일 적에도 난 안 여사의 머리핀이며 장신구들이 예쁜 걸 알았지만 언젠가는 내 취향으로 가득한 나만의 보석상자를 갖겠다고 생각했다.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된 나의 취향을 반영한 작은 컬렉션은 물론, 그 최초의 씨앗은 플라스틱 방울이 달린 머리끈이나 하늘색의 왕 리본이 달린 머리띠 같이 안 여사가 사주거나 내어 준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엄마에게 받은 것들을 ‘물려준’ 거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고 물려받은 귀중품을 제대로 간수할만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는 그와 비슷한 느낌의 알록달록하고 디테일이 풍부한(a.k.a. 화려한) 쪽으로도 뻗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갈래의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엔 실용적이고 몸에 늘 항상 지니고 다녀도 좋을 법한 디자인, 그러면서도 창작자의 고유한 개성이 담긴 디자인을 고르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전체 룩(Look)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구석이 뭔가 하나는 있어야만 해소되는 나름의 이 감각적 불편함은 과장을 좀 섞어서 ‘그냥 평범한 것은 안된다’는 안 여사의, 그 불변의 패션 DNA로부터 기인한다고 느낀다. 이런 식의 에세이를 일 년 가까이 써왔다는 것 자체로도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방면으로 평범하긴 그른 것이다. 


  한 때, 내 취향이 안 여사와는 정반대의 경향으로 발전한 건 어느 정도 그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이 일었던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줄기차게 무채색만 입었던 엄마가 대학생이 되자 옷장을 온갖 색감을 한 자리에 모아둔 팔레트처럼 채웠듯이.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보면 단지 장신구뿐만 아니라 옷이나 신발을 고를 때에도 어떤 건 안 여사 것을 보고 내가 따라서 산 건지, 아님 내 것을 보고 엄마가 따라서 산 건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것들이 있다. 그만큼 이제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가 되었다. 요즘은, 아마도 지난 1년 간 진행해 온 이 ‘엄마의 옷장’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전혀 내 취향은 아닐 거 같다고 생각했던 안 여사의 옷이나 장신구조차 저마다의 미와 쓰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건 내가 그동안 충분한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전에 ‘할머니 스타일’ 같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진주 목걸이를 내가 좋아하는 옷들과 한 번 매치해보았다. 

  ‘보라색 러버’인 안 여사의 취향을 정확히 따른 멀티 컬러 진주 비드. 저렇게 색 조합을 잘 뽑아내려면 한 가지 색깔로 만 꾀어 목걸이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이 좀 크고, 무겁고, 잠금 장식은 예스럽다. 하지만 이 진주 목걸이를 어떤 옷과 함께 입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조합은 면 티셔츠에 플레어스커트. 여기에 플랫폼 샌들을 신으면 올여름 꽤 잘 입고 다녔던 출근룩이 된다. 티셔츠 컬러만 스커트와 따로 놀지 않게 잘 고르면 되는, 의외로 쉬운 이 코디에 나는 진주 목걸이와 볼캡을 같이 매치하는 것으로 캐주얼한 노선을 타기로 한다. 티셔츠 색은 진주알 중 하나와 같은 걸 고르면 된다. 마침 연보라색 티셔츠가 있어 그 위에 오늘의 메인 아이템을 올려 사진 한 번  찍어보았다. 


‘됐어, 느낌 왔어, 오늘 촬영 빨리 끝나겠어!’ 



셀프 칭찬을 하느라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붙잡고 나니 일 년을 달려온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포스팅이 적어도 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체크무늬 스커트는 싱가포르에 사는 사촌 이모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명동의 백화점에서 선물로 사주신 옷이다. 좋은 날 입으려고 아껴두다가 이제 사이즈가 맞을까 맞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경계에 이르게 되자, 자주 손이 가는 곳에 꺼내 두고 입을 때마다 ‘오늘이 좋은 날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투톤 염색을 해봤는데 마침 목걸이도 알알이 번갈아가며 색이 다르니 왠지 더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셀린(CELINE)의 유행 덕분에 이 더운 여름에 볼캡을 정말 아무 옷에나 매치해도 돼서 참 좋다. 


다음 포스팅은 본 연재를 마무리하는 후기 겸 결산 혹은 정산-잠깐, 셈해서 값을 치를 일이 있었던가?-의 글을 쓰려고 한다. 여담인데, 옷 살 돈을 아껴서 주식 사고 청약도 넣어야 하는데 일 년 간 새 옷을 사지 않고 아꼈던 그 돈이 다 거기로 간 것 같진 않다. (차라리 적금을 하나 더 들었어야 하나 싶고..!?) 그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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