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만들기(garden-ing)’ 전시 <part1>
정원만들기(garden-ing)
1.서울역, 피크닉
서울역, 명동 근처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피크닉. 명동이라는 시내 한복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작은 마을 골목길의 한 귀퉁이에 이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작은 빌라나 주택들이 있었고, 한가롭게 골목을 거니는 도둑고양이들도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서울역 근처에는 거대한 고층빌딩들이 자리잡고 있다.
정원이라는 것은 거대하고 위협적인 야생의 자연을 우리 곁에 조금이나마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위협적인 야생의 자연의 아주 일부만을 가져와 울타리쳐진 땅, 즉 ‘가든’에 옮기는 것은 인류에게 왠지모를 안도감과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자연을 파괴한 그 자리 위에 다시 자연의 일부를 옮기는 행위는 모순적인 행동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결국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은 어찌하지 못하는걸. 그런 행동을 반성하기로 마음먹기라도 했는지,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항상 겸손함을 가지고 정원을 돌봐야만 했다.
복잡한 고층빌딩 속 조용한 동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피크닉과 ‘정원만들기’란 주제는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건물 곳곳에서 보이는 작은 주택들의 창문, 그리고 지붕위에 올라가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2.예술가의 시선을 공유하다
‘정원만들기’전시는 시선의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전시와 차별점을 띄고 있다. 피카소, 달리처럼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이 있지 않다는 점이 호불호를 가를 수 있겠지만 그 점이 오히려 이 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2층이 이 전시의 핵심부분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작품없이 그저 텍스트나 설명정도로 이루어진 2층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지루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2층의 전시주제는 ‘정원가들’로, 8명의 정원가들과 그들의 말,글,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었다. 알랭 드 보통에 말을 인용하자면, ‘예술의 진정한 핵심은, 그 예술가가 좋아했을 법한 물건,그 작품세계와 통하는 물건들을 손에 넣는 데에 있고,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래서 그들이 본것을 우리도 세심하게 보는데에 있다.’ 그리고 2층에서는 단순히 그들의 작품이 아닌, 그들의 시선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 미술관에 갔을때, 거장의 그림 앞에서 적당한 반응을 짜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위축되어 본적이 있는가?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에 오히려 그림 자체가 잠식되는 것 같은 거부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오직 타자의 시선으로만 작품을 바라보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관람객, ‘저것’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 그리고 나는 미술사적으로 위대하게 평가받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고. 그동안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받은 우리는 이렇게 타자의 시선으로만 그림을 바라본다. 어떤 예술작품이 우리의 마음에 와닿을 때, 우리는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이걸 좋아할까? 나는 그것에 공감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나와 작가의 시선이 일치하는 순간, 우리는 그 작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와 나의 시선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혹은 일치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들의 시선이 어떤지를 알 수 있어야한다. 단순히 그들의 역사적, 미술사적 업적을 나열하는 것은 우리의 몸을 무겁게 만들지만, 그들을 사람으로서 알아가는 것,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2층에서 우리는 8명의 작가와 시선을 공유하고, 3층과 4층에서 그들이 본것을 우리도 세심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거장의 작품, 그리고 훌륭한 평론가의 멋진 설명을 적어놓은 전시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작가들의 생각과 시선을 보여줄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해석이 아닌, 작가의 시선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말들이 억지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창밖의 고즈넉한 마을 이 보이는 편안한 전시공간은 ‘너는 이 작품에 공감해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그저 어떤것은 남기고, 어떤것은 흘러가도록 놓아두면 되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예술의 전당’같은 막힌구조, 어두운 공간, 그리고 단순히 스포트라이트 된 작품은 설명을 하나의 진리로서 우리에게 강요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저 물처럼 흘러가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3.나의 시간 속으로
며칠 후,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우리동네 공원 조경이 이렇게 잘 되어있었다니!’. 나는 어느새 벤치에 앉아 식물을 보며 전시에서 본 지도를 떠올리고,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키우는 작은 식물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모두가 그들 각자의 정원만들기를 실현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기념품 가게의 역할은 미술관에서 얻은 교훈을, 관람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상생활에 적용하게 되기까지 오랫동안 방문객의 마음속에 유지시키는 데에 있다’. 이 전시는 관람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왔다. 나의 시간 밖에 있던 것이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올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