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 (파트1)

by 하이유월

<파트1>


0.들어가는 말

미술관에 갔을때, 거장의 그림 앞에서 적당한 반응을 짜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위축되는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에 오히려 그림 자체가 잠식되는 것 같은 거부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여기에 그러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미학적 관점에 비판을 제기하는 책이 있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기존의 미술사적 가치나 지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의 관념화된 지식을 통해 정보를 주입하는 기존의 미술 비평계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이 책은 지금껏 우리가 느껴 왔던 거부감에 이유를 제시해주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저자소개

저자인 존 버거는 예술 비평을 사회적인 분야로 확장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한 비평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단순히 미학적인 관점으로만 비평에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존 버거는 초창기에는 화가로서 활동을 했으나, 청년기에 잡지에 비평문을 기고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뒤로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비평가, 소설가로서의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는 단순히 미술비평적인 틀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기만 했던 소극적인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술, 사회, 역사를 아우르는 적극적인 관찰자로서 세상을 바라봤고, 그 유산으로서 그의 책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다.

‘다른방식으로 보기’는 존 버거의 텔레비전 강의를 바탕으로 제작된 책이다. 그는 당시 보수적이고 형식적인 영국의 미술 비평계를 비판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관습화된 화가에 대한 정보나 기법에만 몰두하는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미지를 해석하려 했다.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기존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전통적인 미술비평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던 논쟁적인 작업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이후 디자인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수업에서 교과서처럼 쓰이기도 하며 기존의 관습적인 태도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2. 책의 제목과 구성에 대해

책의 원제 ‘ways of seeing’은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책이 담은 내용이 더 명확해졌다. ‘다른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은 앞에서 볼 수 있듯이 관습화된 미술 비평의 방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들을 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책의 표지에 나와있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저자의 이런 시선을 반영해주고 있다.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저자는 이 그림을 통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를 설명한다. 아는 것은 관념, 즉 외부의 지식이 기계적으로 내면화된 것을 의미하지만 보는것은 다르다. 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순수한 개인의 시선을 이용해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은 우리가 어떻게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이미지를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제목이다.

이 책은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특한 점은 그 중 3개의 챕터가 오직 그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글로 구성된 챕터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면, 나머지 3개의 챕터에서는 오직 보는 행위를 통해 그 의미를 느껴야 한다. 특히 이미지 중심의 챕터의 그림 도판에는 해당 그림의 기본적인 설명이 빠져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또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독자 개개인이 ‘보는 행위’를 통해 이미지 자체를 해석해보라는 저자의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누구나 작품의 명성과 영혼을 움직이는 힘 사이에 놓인 간극을 한 번씩 경험한다”. 이 책의 구성은 그러한 간극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관념에 따르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3. 각 장의 내용 소개


1)1장 소개


1장에서 저자는 복제시대에 원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설명은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의 상실’ 개념과 많이 닮아있고, 저자 또한 벤야민의 생각을 빌려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와 벤야민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을 긍정적으로 봤다. 소수의 지배 집단만이 누릴 수 있던 문화를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됐고, 그로 인해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지배 집단만이 누리던 원작에 대한 신비화를 없앨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견은 미묘하게 달라 보인다. 그는 ‘미술 작품은 복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복제는 사용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우라의 상실이 지배 집단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벤야민이 활동하던 시기와 존 버거가 활동하던 시기의 상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벤야민 사후 몇 십년이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복제라는 수단은 다시 지배 집단을 위해 사용되며 일반 대중과의 거리를 넓혀놓게 된 것이다. 어떠한 개념은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맥락에 의해 그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첫번째 장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아우라의 상실이란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각해 볼 만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 3장 소개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알 수 있듯이,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장에서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2장만은 비슷한 이미지를 통해 공통된 주제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3장과 관련된, 여성의 대상화에 관한 내용이다. 2장은 여성의 누드화, 혹은 여성이 대상화되고 있는 광고나 이미지를 삽입하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장과 3장을 함께 읽는 것은 저자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혹은 저자의 생각을 보기 이전에 2장의 그림만을 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 어느정도인지 측정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3장에서 존 버거는 전통적인 누드화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의 사회적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벗고 있는 대상은 주로 여성이다. 그림 속 여성들은 단순히 벌거벗음의 형태가 아닌 누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누드는 관객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벌거벗음과 다르다. 그리고 관찰자, 관객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에서 누드화 속 여성은 대상화된다. 책 속에서 뒤러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누드화 속 여성의 신체는 시각적인 쾌락을 자극할 만한 방식으로 재구성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는 실제와 다른 방식으로 신비화된다.

신비화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띄는 단어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서양의 회화와 문학에 나타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특히 동양의 여자들을 신비화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동양을 알 수 없는 비상식적인 곳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들의 우월성을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중 하나였다. 누드화도 마찬가지이다. 남성들은 남성중심적인 사고로 누드화 속의 여성을 바라보고 그것을 감시한다.

약 50년 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존 버거가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지금 시대에 약간 낡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이야기가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 속 여성의 인권과 다른 권리들은 남성과 동등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중 매체 속 드러나는 여성의 이미지 소비를 비롯해 여성의 대상화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50년 전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제기한 페미니즘에 대한 물음들은 하나씩 해결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있기에 이 책과 같은 목소리들은 여전히 필요하다.


3) 5장, 7장 소개


5장과 7장은 모두 자본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다루고 있는 시대상황과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두 챕터를 비교하며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5장은 당대 상류층 사이에서 자기 과시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유화의 특성에 대해, 7장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쾌락을 일깨우는 자본주의 시대의 광고에 대해 말하고 있다.

5장과 7장을 보다 보면 광고와 유화가 굉장히 유사한 언어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은 해당 사물의 실제성을 제시하며 소유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가진다. 하지만 자세히 분석해 보면 유화와 광고의 기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유화가 성행하던 시기에, 유화는 오직 자신을 소유할 수 있는 상류층과만 관계를 맺었다. 그런 점에서 소유자에게 유화라는 것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게 하는 도구였다. 광고는 이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광고는 부자보다 일반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고는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광고를 보며 자신이 ‘현재’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감과 불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5장과 7장의 내용을 비슷한 맥락으로 가져가지만, 시대적 상황과 대상의 차이로 변화를 주어 더 깊은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