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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Feb 22. 2024

의뢰인의 선물

2024. 2. 19.

의뢰인에게 선물을 받았다. 3년여 정도의 시간이 걸려 소송이 끝났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고,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완전히 끝이 났다. 승소를 했다고 하더라도 억울하게 소송을 당한 의뢰인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남았을 터이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당장 승패가 중요한 변호사로서는 무척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의뢰인은 직접 만나기를 원했다. 꼭 직접 만나야 할 일이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기대하듯이) 무슨 선물을 주시려고 그러시나, 충분히 보수를 받고 일을 했기 때문에 굳이 또 선물을 주시면 부담스러운데,라는 세속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만남을 청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꼭 만나기는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남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이번 주 월요일에 만나게 되었다.


의뢰인은 예상대로(?) 고급스러운 포장의 세속적인(?) 선물을 내밀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의뢰인은 변호사님 진짜 선물입니다 하면서 책을 한 권 내밀었다. 성경책이었다. 영적인 선물이었다. 의뢰인은 성경책을 주기 위해서 직접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의뢰인이 내민 성경책은 흔히 볼 수 있는 성경책이 아니었다. 가톨릭 성서, 개역개정, 표준새번역 등의 성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였다. 의뢰인은 어떤 선물을 드려야 하나 하고 긴 시간 고민했다고 한다. 의뢰인은 자신이 가장 귀하고 값지다고 생각하는 것, 가장 아끼는 것, 그래서 소중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래서 성경책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분은 성경책에서 '진리'를 만났고, 자신이 찾은 그 '진리'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허무주의)이란, 모든 가치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인간에게는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 없고, 따라서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추구해야 할 진리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니체가 파악한 19세기가 그럴진대, 우리 시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왜 사는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진리는 사라지고, 도저한 허무주의가 삶을 짓누르는 시대다. 이 부박한 시대에 나의 의뢰인은 '진리'를 만났다고 한다. 그분이 만난 '진리'가 정말 진리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분은 진리를 찾았고, 그 진리에 따라서 살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분인 것이다. 나는 진리는 단지 믿음의 문제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이미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상대주의적 태도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가장 좋은 것을 공유하고, 나눠주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진리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고, 설사 진리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만큼 용기가 있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설사 진리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허무주의보다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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