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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Mar 15. 2024

갈망渴望

어떤 마약범의 말

오늘 어떤 마약범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기일(영장실질심사)에 변호인으로 출석했다. 심문이 열리기 전, 체포되어 있는 상태의 피의자를 접견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주거지의 소유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재산 정도는 어떠한지, 가족관계는 어떠한지, 전과는 있는지 등이 필수적인 질문이다. 전부 다 구속사유와 관련이 있는 질문들이다.


이 사건 피의자는 동종 전과가 상당히 많은 사람이었다. 마약 범죄의 특성상 마약 사건 피의자는 통상 전과가 많기는 하다. 약물 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그에게 약간의 심리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끊기가 참 어렵죠,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약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마약범죄자를 여럿 만나 보았지만, '갈망'이라는 단어를 쓴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갈망'이라는 단어를 서너 차례 사용했다.


내가 마약범에게서 '갈망'이라는 단어를 듣고 속으로 흠칫한 이유는, 그 단어가 그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너무도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갈망의 사전적 정의는 '간절히 바람'이다. 무미건조하다. '갈망'이라는 단어가 거느리는 뉘앙스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정의다. '충동'은 맹목적인, 미분화된 에너지 덩어리이고, '욕망'은 다소 추상적인 욕구에 가까운 느낌이다. 반면 '갈망'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목이 타도록 바라고 또 바라서, 그 대상을 취하기 전에는, 아니 그 대상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도무지 해소가 되지 않는 감정의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갈망'은 사람을 파괴한다.


'갈망'은 끊을 수 없다. '갈망'은 도무지 해소를 모른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바닷물을 마시면 더욱 목이 마르고 목이 타들어가듯이 '갈망'하는 마음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끝없이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망'이라는 마음의 상태는 서늘하고 음습하다. 이 사건 피의자는 차분한 표정과 담담한 말투로 자신이 마약을 '갈망'하고 있고, 마약에 대한 '갈망'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아직은 젊은 그 피의자가 그 '갈망'을 끊어낼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니 이겨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가 보여준 차분함과 담담함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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