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8일
할머니는 어젯밤 한잠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어젯밤만 그랬을까. 손자가 구속된 이후로는 식사도 잠도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오늘이 손자의 선고기일인 탓이다. 서초역에서 추위에 떨면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법원으로 갔다. 서초역에서 법원까지 가는 길이 멀고 추웠다. 할머니는 비틀비틀 걸으셨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눠 보니 그새 총기가 조금 흐려지신 것 같았다. 두 달 전에 뵀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손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탓일 것이다. 어느 날은 멀쩡하다가 어느 날은 또 머리가 흐릿하고 멍해지기도 해요. 오늘 유명 정치인의 재판이 있었을까. 공항 검색대만큼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 있었다. 중앙지법에는 늘 사람이 많지만 검색대에 20명 이상 줄을 서서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외투도, 소지품도 검색대 올려놓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사람들의 작은 항의. 죄송합니다, 오전에 검색을 했는데, 칼이 많이 나왔어요. 칼이라니. 누가, 무슨 이유로, 법정에 칼을 숨겨 가지고 들어온단 말인가. 제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사람들을 헤치고 법정에 힘겹게 도착. 우리 엄마가 이곳까지 혼자 찾아올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많은 곳이 노인에게 배타적이다. 선고가 시작된다. 불구속 사건이 많다. 불구속 사건 선고가 끝나고, 이제 구속 사건 선고다. 동종 전과가 많고, 죄질이 가볍지 않고,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범죄사실을 전부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고, 피해의 정도가 중하지 않다,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아, 집행유예다. 할머니가 울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신다. 수의를 입은 손자는 뒤돌아 보며, 할머니 집에 가 있어, 라고 외친다. 이제 손자는 오늘 서울구치소를 나와 할머니가 계시는 따뜻한 집으로 갈 수 있다. 할머니 이제 집에 가 계세요. 손자 곧 집으로 올 겁니다.
나는 대체로 마음의 힘을 믿는 편이다. 여든세 살 할머니의 간절함이 손자를 집으로 올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철없는 손자가 이제 정신을 차리고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야 할 텐데. 다시 볼 일이 없겠지만(없어야 할 텐데), 할머니가 계속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