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암/이문열 옮김/민음사
마침내 수호지를 완독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수호지는 삼국지, 서유기, 금병매와 더불어 이른바 '4대 기서'로 불리는 유명한 소설이다. 또한 중국의 어떤 비평가는 수호지가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의 정신을 형성했다고 할 정도로 수호지는 영향력이 막강한 소설이다(물론 이 비평가는 수호지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모택동은 혁명 과업의 수행의 와중에 수호지를 몸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도 한다. 어떤 평가가 따르든 간에 수호지가 유명한 소설인 것은 분명하다.
수호지에 대해서는 재미있다는 평가가 중론인데, 어쩐지 나는 읽기가 힘들었다. 몇 차례 완독을 시도하였는데, 번번이 실패했고, 올해에만 세 번을 도전한 끝에 겨우 완독할 수 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중고등학교 시절) 읽었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수호지에서 별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가장 주요한 이유는 같은 패턴이 지겹도록 반복된다는 점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인물이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 벌을 피하기 위해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적이 된다. 이렇게 도적이 된 사람들 108명이 송강을 중심으로 양산박에 모여 도적질을 하는 것이다.
수호지 또는 108 도적이 내세우는 대의는 두 가지다.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한다(替天行道)."와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다(四海之內 皆兄弟也)." 강호의 도(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강호의 도'이다.)가 땅에 떨어져 자취를 찾을 길이 없으니 108명의 도적이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도를 행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형제이기 때문에 불의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호지의 대의(즉 정의와 연대)는, 그 자체로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통하는 대의이다. 인간 사회는 늘 타락한 상태여서 정의가 실현된 적이 없으며,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가진 자는 늘 더 가지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약자는 늘 희생되고 억압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대의를 실현하는 방식인데, 수호지에서는 아주 손쉽게 누군가를 죽이는 방식으로 대의를 실현하려고 한다. 물론 죽을 만한 짓을 한 놈들을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 우리의 형제인지 아닌지의 기준 또한 공감하기 어려운데, 그저 양산박 무리의 편을 드는지 아닌지가 기준이 된다. 내 편은 형제, 상대는 그저 죽일 놈이다.
그러나 수호지의 장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수호지를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버전도 있다.), 확실히 마음이 옹졸해진다거나 기분이 약간 처져 있을 때, 수호지를 읽으면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내일이 없는 듯 술을 몇 날 며칠을 마시는 장면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뎅강뎅강 목을 베는 장면들을 읽노라면 속이 좀 후련해진다. 또 108명의 전부에 대해 개인사를 자세히 베풀고 있지는 않지만, 주요 인물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재미있기도 하다. 가령 108 도적 중 한 명인 무송의 이야기는 4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를 태동시키는데, 그 시절에도 수호지가 내장한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눈에 띄었음을 방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송강, 이규, 공손승, 노지심 등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일종의 스핀오프)를 만들어도 될 만큼 무척 흥미롭다. 수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부분만 발췌독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