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8.
아침에 일어나서 카페인 충전을 위해 배달앱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아내는 따뜻한 카페라테, 나는 달달한 아이스커피. 10분 정도 지나서 도착 알림과 함께 배달원의 배달 인증샷이 올라왔는데, 우리 집이 아니었다. 아니 어디지. 장모님 댁 앞이었다! 며칠 전 추석에 장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배달앱에 배달받을 주소를 장모님 댁으로 변경해 놓은 것을 깜빡하고 그냥 주문을 했던 것이다. 이런...역시 아침에 잠이 덜 깼을 때는 주의력이 떨어지기는 하나 보다.
장모님은 커피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특히 달달한 커피를. 커피숍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커피숍 문화에 익숙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물론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무 이유 없이 커피숍에 들어가서 적게는 5천 원에서 많게는 1만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하고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거나 멍 때리는 행위를 해 본 적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어느 세대의 문화가 더 낫다거나 더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내 눈에 우리 부모님 세대의 문화는 척박해 보인다(물론 소위 MZ세대의 눈에는 내가 속한 세대의 문화가 척박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물론 나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며칠 전 "추석인데 집에만 있지 말고 형수님과 카페라도 가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친한 후배가 스벅 쿠폰을 보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이라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뜻하지 않은 커피를 받고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기분이 좋으셨길. 다음에는 실수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커피를 보내 드려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잘 주무실 수 있으실지 걱정이다. 쓰리샷인데...
몇 달 만에 방 청소를 했다. 어찌나 개운한지. 책과 서류, 펜, 노트가 거의 전부라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서류다. 버리기도 보관하기도 애매한 서류들이 많다. 이 서류들은 대체로 형사소송 때문에 생긴다. 소송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민사 사건과 행정 사건의 경우 전자소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종이서류가 생길 일이 거의 없다. 편하기도 하고, 우리 별 지구를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아직도(!) 민사 사건과 행정 사건의 경우에도 기록을 전부 인쇄해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무슨 어리석은 행동인가! 기록을 인쇄했다는 것만으로 그 변호사는 패소 판결을 받아 마땅하다!(물론 농담이다. 그러나 먼 훗날 자연의 법정은 분명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할 것이다.)
문제는 형사소송이다. 도무지 전자화를 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란다. 코웃음이 난다. 우리나라에 지켜야 할 개인정보란 것이 있는가. 이미 여기저기서 다 털린 거 아닌가. 냉소적으로 얘기를 했는데, 다시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물론 개인정보 보호해야 한다. 형사사건의 경우, 만약 유출될 경우 (민사나 행정과 달리)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명예 감정 내지 인격을 훼손할 소지가 분명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자화를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전자기록은 판사, 검사와 변호인만 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누가 정보를 유출한단 말인가. 최근 법원 단계에서는 점차 형사소송의 전자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검찰이다(여기서도 문제는 검찰이군.). 수사 단계에서 기록을 전자화하지 않으니 변호인은 공판기일 전에 검찰청에 가서 기록을 복사해 와야 하고,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지를 않는다. 수사의 밀행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역시 코웃음이 나고) 그에 대해서는 5가지 이상의 근거를 대며 철저하게 반박해 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 전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곳에서 여전히 종이기록이라니...이 무슨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작태인가! 모든 개혁은 작은 것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고 개혁의 목적이 민생을 위한 것이라면, 검찰 개혁은 형사사건의 전자소송화부터 하기를!
추석 연휴 시작 전, 독서 계획이 거창했다. 문제는 너무 거창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계획은 <서유기>를 완독 하고, 멜빌의 <모비딕>을 완독 하고, <모든 것은 빛난다>를 완독 하는 것이었다. <서유기>는 총 10권 중 1권도 다 못 읽었고, <모비딕>은 펼쳐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모든 것은 빛난다>는 겨우 완독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에도 없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를 읽었는데, 의외의 성과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