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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Dec 25. 2020

작품 속 '드 윈터 부인'을 닮은 <레베카>(2020)

넷플릭스 영화 <레베카>

드 윈터 부인, 영화<레베카>(2020)


소설 속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나', 1940년 영화에서는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라고 명명하는 주인공. 2020년 작품에서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한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레베카> 속 화자는 이름이 없다. 이렇게 작품 밖에서부터 레베카의 위력이 느껴진다.

작품 특성상, 이 글에서 작중 화자를 지칭할 때 결혼 전은 '나', 결혼 후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지칭하겠다.


1. 순진함: 4점 _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2. 매력: 2점_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3. 로망: 4점_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4. 자존감: 0점_ 유령은 믿지 않지만

5. 서포트력: 5점_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순진함,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화자는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이자 길동무로 동행할 때도 순진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맥심 드 윈터'와 몬테카를로의 호텔 인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들이었다.


반 호퍼 부인 말마따나, 정말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던 걸까?

옆방에 있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까내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동무로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없었다니.

좋게 말하면 순진함, 나쁘게 말하면 눈새.


매력,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1940년 작 <레베카>에서 맥심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반한 건 당신의 외모가 아니라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서였어"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

뻥 치시네. 저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해? 못 믿을 사람이네.

1940년 작에서 '나'는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맥심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그러나, 2020 작에서는 '드 윈터 부인'의 외모가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퍼 먹이듯 답답한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레베카와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는 맥심의 말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다이아 수저에게만 예뻐 보이는 매력인가 보다. 난 도무지 부인이 왜 매력적인지 모르겠어....


로망,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부인이 되기 전, '나'는 호텔에서 맥심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 날 이래로 황홀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 로비며 테라스로 향하면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맥심의 쪽지를 건네준다. 쪽지에는 오늘의 데이트 코스가 적혀 있다. 그러고 나서 맥심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가 맥심과 시간을 보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가본 곳보다 많고, 해본 것보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맥심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모아 두고 다시 쪽지를 받을 때로 돌아간 듯, 행복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나'. "For me?(저한테요?)" 하고 쪽지를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예측해볼 수 있다. '나'는 귀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구나. 꿈꾸는 듯하겠구나.


자존감, 유령은 믿지 않지만

맥심을 따라 맨덜리 저택으로 간 드 윈터 부인은, 유령 따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별한 전 부인 '레베카'에 대해서는 도통 말해주질 않는 맥심, 드 윈터 부인 앞에서 레베카를 회상하고 비교하듯 언급하는 고용인들과 맥심의 친척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에 압도된다. 무엇보다도, 저택에 처음 왔을 때부터 위기 상황이거나 평화로운 분위기이거나 상관없이 레베카의 이니셜 "R"이 표기된 물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저택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레베카와 마주하는 드 윈터 부인은 시종일관 주눅 들어있다. 자신이 아닌 레베카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하는 집사 '댄버스'에게도 "이젠 내가 드 윈터 부인이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서포트력,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드 윈터 부인의 전 직업은 나이 든 귀부인의 말동무 겸 심부름꾼. 그래서였을까?

맥심과 결혼한 후, 저택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드 윈터 부인이 영화 후반부에는 돌변한다.

맥심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화끈한 행동력까지 보여준다. 영화를 직접 감상하실 분들을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때에만 초능력처럼 발휘되는 냉철함, 판단력, 행동력. 그 모든 능력들이 드 윈터 부인을 더 이상 무기력한 인물이 아닌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로 자리 잡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 1940년 작  <레베카>,

그 영화의 원작인 소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위협적인 아우라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

그리고 이 작품,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 영화 <레베카>.


1940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품을 깐깐한 시선으로 감상했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


1940년 작과 비교하며 혹평만 가득 담은 리뷰를 작성하게 되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작을 리메이크할 때 느꼈을 법한 고충을 상상해봤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요소인 발생 에피소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상황. 더군다나 스산한 스릴감을 멋지게 전달해준 작품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겠지.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풍성해진 사운드와 볼거리

인물들의 대화 뒤에 잔잔히 깔리는 파도소리, 드 윈터 부인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비트 등 청각 효과가 풍성해져 상황 전달이 잘 된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볼거리도 굉장히 많아졌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덜리 저택 가면무도회 장면이었다. 레베카를 아는 듯 한, 저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유일하게 레베카를 모르는 드 윈터 부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함, 불안함을 1940년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유일하게 옛 영화보다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는다.


훨씬 친절해진 상황 설명, 그러나 비교적 약해진 스릴감.

줄거리를 완전히 혹은 대충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감상할 때 연출, 즉 상황 표현에 집중케 된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 1940년 작에 비해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

1940년 <레베카>에서는 댄버스의 침묵과 시선처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화면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비해, 2020년 <레베카>에서는 침묵, 화면 연출보다 인물들의 대사 비중이 늘었다. 말이 많아진 댄버스, 처음 보는 캐릭터인 시할머니 등 여러 인물들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주니 편리하다. 하지만,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작중 화자와 시선과 정보 공유를 함께하며 느끼던 스릴감은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컬러, 사운드 등의 기술적 발전은 했으나 연출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릴러도 로맨스도 아닌 채 어중간한 곳에서 오락가락하는 영화.

그래서, 언제나 맨덜리의 파도소리가 따라다닌다는 음향 표현이 이해는 가도, 인상 깊지 않았다. 오히려 뮤지컬 음원을 통해 듣는 파도 소리가 훨씬 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에서는 파도 소리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새>를 오마주한 듯한 '철새들의 움직임'이 더 인상 깊었다.


시대 배경 표현에 있어서 안 꾸민 듯, 꾸민 듯?

초반부를 감상할 때는 시대 배경을 현대로 재해석한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등장하는 자동차 디자인과 '얼마 전 찍었다'는 결혼사진이 흑백 가까운 세피아 빛인 것을 단서로 삼아, 소설 레베카의 시간을 따르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단서를 몇 가지 발견한 뒤에도 어색함이 느껴져 이상했다. 고전영화 <레베카>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가? 하고 반문해보다가 떠오른 영화가 있다.

바츠 루어만 감독의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유행했던 재즈 음악들을 2013년에 맞추어 리메이크했다. 또한, 당대 파티 문화, 의상, 배경이 되는 공간들과 소품들까지 '이 시대가 아니라 그 시대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줬다. 영화가 컬러인가 아닌가는 아무 상관없었다. 시대 배경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2020작 <레베카>는 시대 표현이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당대 시대상이 개츠비만큼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도, 지금과 다른 시대적 특성을 더 살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리뷰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레베카>가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 되어 버렸다.

작중 '나' 또는 '드 윈터 부인'처럼, 2020년 <레베카>는 1940년 <레베카>와 힘겨운 싸움을 했다.


취향 따라 결과 판정은 달리 할 수 있지만, 일단 내게 있어서 이 싸움의 결과는 1940년 작품의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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