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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Jun 01. 2023

광안리에서 기억에 남는 거요? 인파 그리고... 인파요

내가 편안함을 누린다면, 누군가가 불편함을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그리고 해변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이곳.

부산하면 어느 해변이 떠오르는가?

나는 대학 친구들과 내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동생과 단 둘이 부산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여행지로서 알고 있는 부산 명소가 해운대와 벡스코뿐이었다.


겨울에 해운대 바다에 가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해운대 가운데 부근에서부터 절벽 위 호텔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그러고선 바위 위에 늠름하게 서있는 호텔을 올려다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저 호텔에서 숙박하려면 얼마가 들까? / 우리 다음에 저기도 와보면 좋겠다 / 그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 응. 될 거 같아.


그러고는 다시 처음 발을 담갔던 위치까지 걸어갔다가 물가에서 좀 더 먼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발을 방석 삼아 앉아서 발이 마르고 모래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연을 날리는 아저씨와 멀리서 훨훨 날고 있는 연을 봤다.

저 아저씨 연 잘 날리신다. / 어디? 어디? / 저기 점처럼 보이잖아 / 지금 날리고 계신 거야? / 응 줄 연결되어 있잖아. / 우와 여기는 나무에 걸릴 곳이 없어서 끊어지지는 않겠다. / 바닷가라 바람도 잘 불어서 잘 날아가나 봐 /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냐 / 신기하네.


그 뒤에 부산에 왔으니 부산어묵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며, ‘다른 데 말고 여기가 진짜 부산어묵 집이다'라고 주장하는 한 포장마차에서 어묵 두 개씩과 국물 두세 번씩을 맛있게 먹었다.


첫 남매여행이자 첫 기차 배낭여행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그 덕에 아직도 나는 부산이라고 하면 요즘 핫한 광안리보다도 해운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해운대보다 먼저 광안리 해변에 갈 계획을 세웠다.



광안리 해변을 여행 계획에 급히 끼운 이유

(feat. 밤바다 불꽃축제)

2023년 4월, 나는 엄마와 모녀 부산 여행을 했다. 일부러 짜 맞춘 것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스케줄뿐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부산 세계 엑스포 유치 기원 행사와 우리 모녀의 여행 일정이 맞물렸다.


여행 계획 중, 다양한 활동을 해보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도 혹시 모를 이벤트를 대비해서 넉넉하게 시간계획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고, 광안리로 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행을 앞두고 1주일 전에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우리 모녀가 여행하는 이 기간 동안 부산에서 '세계 엑스포 유치 기원'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정보였다.

부산 각지에서 행사를 여는데, 광안리 해변에서는 엄마와 내가 부산에 도착하는 날 저녁에 불꽃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몇 년 만에 열리는 행사이며, 예쁜 볼거리라고.


지난해, 서울 불꽃축제에 갈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나를 만류하며 친구가 했던 조언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ㅇㅇ아, 불꽃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집에서 유튜브로 본다.
절대 현장에 가지 않는다."

광안리 해변 근처에서 돌아 나온 이유

: 불꽃 보러 갔다가 인파 구경만 하고 왔다.

숙소에 짐을 풀어두고, 한 시장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을 여유 시간을 두고 광안리 해변으로 향했다. 분명히 광안리 근처 역에 도착했을 때까지는 감당할 만한 인파였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역 내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경기권에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며 만나본 인파에 비하면 힘들지는 않았다.


역을 나서서 우리가 한창 빠져 있던 포케집을 찾아가면서 굉장히 특이한 차량을 발견했다. 광안리 해변 인파 밀집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중계차량이 있었다.

초록, 노랑, 빨강으로 구분하는데, 초록이면 인파가 몰리지 않은 편. 빨강이면 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 중계차량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이용객들이 인파 밀집 현황을 보고 어느 곳으로 갈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광안리 포케올데이

포케 집을 발견했는데, 2층이었다. 올라가 보니 매장 밖의 거리를 여과 없이 볼 수 있는 투명한 통창 인테리어였다. 그래서 거리가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했다. 메뉴를 주문하고, 대기하고, 받아와서 소스를 붓고 섞고, 한 입 두 입 뜨는 순간마다 거리의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인파가 불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와중에 사거리에서는 차와 사람이 쏟아지듯 몰려와도 사고 한 번 나지 않았다. 수많은 경찰들이 횡단보도와 도로 복판을 오가며 통제 및 수신호를 하며 질서 유지를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일사불란함이 멋졌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피곤함은 안쓰러웠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행사가 마무리되고 인파가 어느 정도 해산될 때까지 계속 한 공간에서 반복 작업을 하실 터였다.


공연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공연 활동을 할 때는 그 세상만 알았다. 남들 놀 때 일하는 건 공연업뿐인 것 같았다.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공연업만 그런 줄 알았다. 다른 업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조차 공연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예전 내 생각들은 철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광안리 해변 인근에서 봤던 경찰관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려 할 때 반복 업무를 하며 수고해 주셨다.

우리가 방문한 포케 집은 광안리 해변으로 향하는 길 사거리의 한 코너에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거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어디에서 밀려오는 것인지,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드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쓰나미를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부산 사람들 다 여기 오고 있나 보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엄마와 나는 약속한 듯이 말했다.

자, 다 먹었으니, 이제 숙소로 돌아볼까. / 좋아요.


밤바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인파에 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바닷가 쪽이 아닌, 숙소로 가는 길로 되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광안리 전 역 승강장. 한 정거장 더 걸어갔더니 인파가 뚝 끊겨 있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뉴스에서 사건사고 소식 한 번 안 들린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편안함을 누린다면, 누군가가 불편함을 대신해서 이고 지며 돕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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