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생 때, 문학 수험공부를 하던 방식ㅋㅋㅋ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문학 공부를 할 때, 시험을 위한 공부는 잘 못 했다.
좋아하는 평가 방식은 상상해서 쓰기, 글을 읽고 감상을 적기였다.
반면, 가장 싫어하는 평가는 독서퀴즈였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그 소설 속 세세한 내용을 기억하는지 맞추는 활동이 정말 싫었다.
나는 문학 작품을 한 편씩 만날 때마다 이렇게 공부하곤 했다.
인물 관계도를 그려서 각 인물의 성향, 인물간의 관계를 마인드맵처럼 그려보곤 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기승전결 각 단계마다 한 문장씩 메모하는 방식으로 흐름을 적어뒀다.
공부를 위한 활동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음미하는 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음미하는' 정리는 시험을 위한 공부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알려주시는 방법, ebs 강의를 들으며 얻은 정보 등을 조합해서 문학 공부를 해보려 노력했지만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볼까 고민하다가 엉뚱한 생각에 다다랐다.
한국 문학 전과를 다 외워볼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가장 빨리 다가오는 주말에 교보문고로 향했다.
한국 문학을 요약한 전과라고? 과연 그런 책이 있으려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문학 전체 리스트'책은 실제로 있었다.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내가 골랐던 책은 역사 또는 문학 시간에 들어봤음직한 작가들의 잘 알려진 작품부터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의미가 있는 작품들까지 다루는 교재였다.
시대 순으로 작품이 나열되어 있었고, 각 작품별로 줄거리와 그 작품이 의미하는 것 등 간략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두꺼운 책으로 총 두 세권으로 구성된 한국 문학 요약집을 사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작업에 들어갔다.
두꺼운 책을 소화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책을 쪼개는 것이었다.
커터칼을 들고 책 등을 갈라서 쪼개기 시작했다.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쉬는 시간이나 급식실로 또는 체육관 등으로 이동하는 시간에 잠깐 보기 좋을 정도의 분량으로 쪼개고, 종이가 흩어지지 않도록 스테이플러로 찝었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그 이야기 흐름을 알면 시간 단축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렇게 믿으면서 방대한 작품들의 스토리를 그야말로 때려넣는 1년 하고도 몇 개월을 보냈다.
어떻게든 국어 점수를 올려보겠다는 발버둥이었지만, 이야기를 수집하는 거라 생각해서 그 작업은 괴롭지 않았다.
문제를 푸는 게 괴로웠지ㅋㅋㅋ
고3 수능이 다가올 즈음에 스토리 머릿속에 때려넣기의 효과가 드러났다.
모의고사나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한국문학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배경과 인물과 이야기 흐름 그리고 이 단락은 어느 서사 즈음이겠구나 하는 걸 파악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게, 국어 선생님께서 퀴즈를 풀 때 못 맞추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퀴즈를 맞춰서 얻는 포인트를 충분히 모아서 답을 알더라도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문제를 맞추려고 하는 동급생들에게 힌트를 줬다. 그런데 힌트를 보고도 못 맞춘 동급생이 "아니 이걸 누가 알아요, 쌤!" 이라고 외쳤다. 그 때, 선생님께서 내가 주던 힌트를 보시곤 "ㅇㅇ이는 정확히 알고 있는데?" 라고 하셨었다ㅋㅋㅋ
*답은 <목넘이마을의 개>였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 작가의 작품이다. 내가 준 힌트는 두 손으로 목을 조르듯이 감싸쥔 것이었다.
하지만, 수능 언어 과목은 그런 식으로 공부해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나는 국어 시험을 말아먹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닥치는대로 읽고 수집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은 두고두고 내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뮤지컬을 공부할때, 대학에서 문학이나 연극 그리고 영화 관련된 전공 수업을 들을 때. 학교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싶은 영화나 공연을 보고, 읽고싶은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이 작품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마, 글감을 고르거나 글의 구조를 잡는데도 도움이 되고 있는 거겠지.
*인물관계도를 그리는 것이나 줄거리 요약, 문학 전집을 사다가 달달 외우다시피 읽는 것 중에서 어느 하나도 '이거 해라'라고 누군가 시키지 않았다. 자기주도성이 참 끝내줬구나! 내 학창시절 모습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