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소년이 온다, 4.3., 역사, 그리고 계엄
가장 좋아하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을 때마다하는 생각과,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느낀 바, 그리고 이번에 계엄선포와 해제를 경험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엮었다.
2024년, 올해가 가기 전에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올해, 마지막 달 초부터 여러 사람들의 계획과 목표를 뒤흔든 사건이 있다. 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탄핵소추안 결의.
계엄 소식이 sns로 퍼져나가고, 그에 대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라는 동네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하고 생각했다.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나서, 나는 책을 주문했다.
부커상이나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해도 읽을 마음이 없었던,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마음에 오래 남아 힘들 것 같아서 안 읽으려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이틀간 몰아 읽었다. 언젠가 전라도 광주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들고 가서 현장에서도 읽고 싶다.
국가와 국민에 얽힌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이런 관심은 나만의 움직임은 아닌지, 유튜브에서 관련 콘텐츠를 추천받고 있다. 가장 자주 보이는 주제가 '제주 4.3 사건'이다.
광주 민주화운동, 부마항쟁 등 다른 이야기들에는 각자 '의미를 담은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아직 이렇다 할 이름이 붙지 않아서 그냥 '사건'이라고만 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를 수학여행으로 한 번 가봤지만, 매년 여행을 오가는 국내 여행객들의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워만 하는 모습'을 보며 제주 토박이 주민들은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제주4.3.사건을 말하는 영화 <지슬>을 아직 못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 용기가 없어 못 가보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처럼 오랫동안 “언젠가 할 것”목록에 담아두고만 있다.
그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읽거나 듣거나 보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겁고 벅차다.
고3 때 수해 피해를 입었던 당시, 나는 워터밤을 포함한 모든 여름 축제 여는 지역과 기획사와 참여자들을 경멸했다. 우리 지역에는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피해가 났고, 서울 및 수도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 어느 야산이 무너져 내려서 바로 앞 아파트로 흙더미가 쏟아졌던 그 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축제를 진행하는 집단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한 해가 지나고 나서는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해 피해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 돌이켜봤다. 이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니, 여름에 휴가를 가거나 축제에 참여하려 할 때마다 그 해, 그 시기의 피해 상황을 한 번씩 돌아보고 결정하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강철의 연금술사>이다. 더할 나위 없이 복선과 회수, 캐릭터의 매력, 사건의 전개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작가가 갖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인물들이 펼치는 모험은 흥미롭지만,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할 때가 잦다.
예를 들면, 이야기 속에서 '이슈발'이라는 지역은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이 속한 국가‘아메스트리스’에게 침공당했고, 대 학살이 벌어졌다. 이런 어두운 역사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이슈발인에게 주인공은 “너희야말로 우리 동네에 불 지르고 내 친구 부모님을 죽였다.”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증오의 연쇄를 끊자는 메시지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제대로 된 해결은 없다. 피해자가 참아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강제점령에 대해, 그 속에서 일어난 많은 비인륜적 사건들에 대해 현재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또는 강하게 부정하는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말이었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만화 원피스에서도 주인공 루피의 할아버지 거프와의 악연을 떠올리며 루피에게 적대적인 캐릭터를 ‘과거사에 얽매여 현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 부분도 오싹했다. 이게 일본 전반에 깔린 역사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로 지나간 일들에 대해,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이 헤쳐나갈 방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다.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에 살던 사람들과 다른 존재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풀어내야 할 문제는 풀어내야 한다.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책임 지우기나 서로 적개심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 그리고 적용하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 해답도 역사 속에 힌트가 있을까?
24.12.28.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연극 <푸르른 날에>도 떠오른다.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올 봄에 다시 올라온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