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입 논술이 궁금해서 한 대학교의 모의 논술 시험지를 다운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논술 시험을 치른 적이 없기에 대입엔 어떤 ‘쓰기’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문서를 열어보니 6페이지에 걸쳐 주어진 9개의 지문이 펼쳐졌습니다. 이 지문들을 읽고 문제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페이지 당 약 2,000자 정도. 그러니까 약 12,000자를 읽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양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주장을 (나)의 논지에 근거해 서술하고 (아)와 (자)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서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문제 자체도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게 만약 대입을 위한 시험이라면 긴장까지 더해져 ‘과연 이것을 잘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채점은 기준은?’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대입에 성공하는 수험생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막연하게 논술은 한가지의 주제를 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풀어내는 것이라 생각 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적지 않은 지문과 질문을 보곤 당황스러웠습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해진 지문 안에서 서술한다면 답변들도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게다가 수정액과 수정테이프 사용은 절대 사용 불가하다는 문구를 보고 백스페이스에 익숙한 세대들이 과연 ‘수정 없이 한 번에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사 하나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아직도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글을 지워가며 다시 쓴다는 김훈 소설가가 아니고서야 과연 가능한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핸드폰을 들어 한 고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논술이 과연 변별력이 있고 서술자의 자유로운 생각이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글쎄. 그러한 부분을 지향하는 바도 있지만 지양시키는 점도 있는 것 같아. 나도 그 부분은 사실 퀘스천마크가 붙긴 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써내는 학생들을 보면 글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는 학생도 많고 설령 답변을 써내도 상당 부분 비슷한 답변을 써내는 학생들도 많아. 생각해보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2~3주 안에 학생들이 논술학원을 등록해 다니는데 너도 알다시피 ‘쓰기’라는 것이 며칠 만에 뚝딱 되는 것이 아니잖냐. 그렇다보니 학생들은 어느 정도 서론, 본론, 결론 구색 정도만 맞춘게 되고 비슷한 답변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라. 오죽하면 글을 보면 어느 지역, 어느 논술학원에서 배웠는지 까지 알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겠냐.”
듣고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어느 세월에 글을 쓰고 문학 작품을 읽어보며 내 생각을 글로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입시도 바쁜데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수천 년간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던 ‘쓰기’가 보통 사람들의 ‘쓰기’가 된 것은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터넷, 문자 메시지, 댓글, 이메일, 회의자료 작성 등 전례 없이 폭넓은 쓰기가 가능한 시대에 규격화 된 글쓰기를 강요받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글쓰기가 ‘공포’의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입니다.
쓰기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친구와,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알게 된 것이나 경험하고 느낀 것 등 자신과 연결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쓰기’의 공포에서 벗어나 즐기는 쓰기가 될 것입니다.
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학사정 자료로 보내는 것은 ‘논술’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평소 그들이 써두었던 글을 대학이 보고 학생의 내면을 파악해 자신의 학교에 입학 시킬지 말지를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로는 위와 같은 ‘에세이’가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쓰기’에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려면 이들이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 주변의 소소한 관계(연결)들로부터 시작하는 방법이 부담이 적고 효율적입니다. 내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봉사 활동을 갔던 이야기를 쓰다보면 자신이 쓰는 글이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것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힘을 길러주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학창 시절 다양한 책을 접해야합니다. 특히, 입시로 멀어진 책을 읽어야합니다. 책은 생각하는 것에 가장 필요한 도구입니다. 독서를 통해 타인의 생각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입시가 획일적인 학습을 강요하는 바가 없진 않지만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그것들을 역행하면서 스스로가 질문하고 생각할 줄 아는 읽기와 쓰기가 되어야하며 결국 이것이 실제 논술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로 나올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