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May 15. 2024

무고한 생명을 위한 기도

매년 1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화를 나눠보긴커녕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다. 



2019년 1월 18일, 아이와 함께 남편이 있는 캐나다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캐나다에 가기 전 잠시 여행 겸 들른 곳은 다름 아닌 LA. 그즈음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13년 만에 대학 시절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토론토 대신 그녀가 살고 있는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알게 된 사실. 우리가 도착하기 3일 전 그녀의 가장 친한 절친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우리가 금요일인가 도착했는데 도착하고 난 다음날이 그녀의 장례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신난 상태로 도착했는데 웬걸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그런 일이 있으면 여행 일정을 변경해도 됐었는데 어찌 그랬나 물어보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워낙에 정신도 없었고 일정을 변경하기에는 너무 코앞이라 이야기하기도 뭣했다고. 그리고 이 시기를 누군가와 보내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단다. 거기다 13년 만에 잡은 태평양까지 건너오는 약속인데 취소하기 싫었다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13년 만에 만난 친구가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라니. 그렇기에 감사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일이 일어난 직후에 만난 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전혀 감도 안 잡혔다. 게다가 그녀에게 아이와 내가 신세 지고 있는 상황이라 미안함만 더 커졌다. 그녀는 오히려 이 시기를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애초에 5일만 있을 계획에서 3주 후로 비행 편을 늦췄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다.



병가를 내기 전 근무할 당시 회사에서 가장 중요시하던 것은 직원들의 정신건강이었다. 우리 프로젝트 특징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될 일이 많아 웰니스 프로그램은 일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전담 웰니스 팀이 있었고 오전/오후에 웰니스 프로그램이 있어 팀원들은 근무시간 중 원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때로는 그룹요가, 명상, 정신건강에 대한 수업 등이 주를 이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팀별로 테라피스트가 이끄는 웰니스 시간이 있어 팀원의 스트레스 지수를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들었던 웰니스 시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살 예방 교육이었는데 자살에 관한 수업을 듣고 각자 해당 웹사이트에서 그것을 꼭 들었다는 테스트와 같은 인증을 해야 할 정도로 자살예방에 강조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억나는 내용으로 보통 자살 징후는 함께 사는 사람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보통은 우발적으로 일어나기에 가족들도 잘 모를 수 있다고. 



나는 병가를 내고 반년 정도 심한 약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그 증상이 너무 심해 의사와 상의 없이 약을 끊은 적이 있다. 그리고 곧 미칠듯한 금단현상이 찾아왔고 종국엔 극심한 자살충동을 겪었다. 차마 가족들에게 말은 못 하겠고 하지만 마음은 터질 것 같아 당시 가깝게 지내던 분들께 잠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안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 자신을 못 견디고 있었고 아마 그때 나는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랐나 보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떡하냐, 그 정도면 얼른 병원을 가고 약을 먹어라로 그분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나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오히려 나는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차 싶어 그분들께 아까 한 말은 농담이었다고 이젠 괜찮다고 하니 '그래 나 너무 무서웠고 지금 굉장히 우울해 너 때문에'라는 답변이 돌아와 더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사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한국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 이 상황을 털어놓았고 당시 주말 부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혼자 지내던 친구가 당장 한국에 들어와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친구 덕에 나 홀로 한국에 들어가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많이 달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 약 8개월간 매일 그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당시 LA 친구도 절친과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까지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녀는 다정한 남편과 어여쁜 2살과 5살 아이를 둔 엄마였다. 그녀의 가족들 역시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다. 



우울증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전쟁이나 화재,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무고한 생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살생존자로서 나는 아침마다 그런 무고한 생명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말까 고민하는 생명이 있다면, 그러지 마세요. 당신은 정말인지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신 안에는 온갖 아름답고 귀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부디 당신 안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셔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시기를, 당신에게 주어진 귀한 생명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물론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모두에게 평안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평안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