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빠진 나는 오로지 스스로만 구해 낼 수 있다

병가일기 #17

by 라이팅게일

*본 편에는 공황장애 증상에 관한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저의 시행 착오가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담았지만 혹시나 트리거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 읽으시기전 미리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공황장애를 처음 경험한 건 4년 전인 2021년 8월의 마지막 주, 아이의 새 학년 개학을 앞두고 캠핑을 준비하던 어느 주말이었다. 색다른 걸 먹지도 않았는데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얼굴과 머리에 심한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간지럽다거나 통증 같은 건 없었고 다만 괴이할 뿐이었다.


놀란 마음에 향한 응급실에선 이거저거 묻더니 별 이상 없다며 시판용 알러지 약 이름을 적은 종이를 줬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만 지나면 좋아질 것이니 캠핑에 가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떠난 캠핑이 좋을 리 없었다. 당시엔 불안 증세인 줄도 몰랐으나 신경은 날카로웠고 내 안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불편하기만 했다. 슬프게도 나의 히스테리인 줄 알았던 캠핑 첫날밤 생애 첫 패닉 어택을 맞이했다. 다음 날 나는 자괴감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상한 증상에 사로잡혔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마치 자동차 경주 게임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어지러웠고 자동차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은 느낌에 괴로웠다. 두려움보다는 기묘한 현상에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 뭔지 알아야 두려움도 느낄 테니까.

당시 오후 출근이었던 나는 어찌어찌 업무를 마쳤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병가를 냈다.


한 달만 쉬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약도 먹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고역이 되어갔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의사 선생님과 테라피스트들에게만 내 운명을 맡길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이 상황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의료진들은 나의 설명을 바탕으로 가이드를 줄 뿐 24시간 나를 관찰하지 못하기에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마음의 병을 CT나 X레이로 찍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나를 철저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 첫 번째 실험: 식단 조절

3년 전 약 복용에 따른 부작용과 심한 우울감으로 내 몸무게는 80kg까지 불어났다. 심한 증상에 거동도 힘들 정도라 우선 홈트로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온라인으로 코칭을 받았는데, 코치님이 짜주신 운동 루틴과 식사 루틴을 두 달간 이어갔다. 몸무게는 5kg 정도 빠졌고 컨디션도 나아지는 듯싶었으나 웬걸 생전 처음 폐렴과 위경련을 경험했다. 코치님이 짜준 식단은 조금씩 자주 먹는 식단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나에겐 맞지 않아 생긴 결과였다.



✅ 두 번째 실험: 단식

폐렴에서 벗어나니 역류성 식도염이 찾아왔다. 나는 평생을 먹고 바로 누워도 한 번도 탈이 난 적이 없었는데 하루 종일 입에선 쇠 맛이 나고 헛배가 부풀어 오르니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은 약 처방에 있어 부작용을 감안해 여러 약을 함께 처방해 주지만 캐나다는 증상에 충실한 약 하나만 처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도염 약의 부작용은 소화불량과 복부 팽만감이었다. 약을 2주 먹어보니 입에서 쇠 맛만 나지 않을 뿐 소화는 계속 안되고 불편했다.

약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약 복용을 멈추고 이것저것 시도했다. 20년 마신 커피를 끊었고 16:8 단식과 레몬 물 마시기를 시작했다. 위에 좋다는 영양제를 꾸준히 먹었다. 3개월 즘 지나자 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간헐적 단식은 브레인 포그에도 도움이 되었다. 꾸준히 단식을 이어오다 작년부터 공복 시간을 20시간 이상으로 늘려 1일1식을 했다. 몸이 디톡스 되는 느낌과 절제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것이었다.


✅ 세 번째 실험: 공복 운동의 함정

8개월 전 나는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문제는 입맛이 좋아졌고 20시간 공복 유지가 힘들어진 거 같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밀어 부쳤다. 작년 하반기에 걸렸던 코비드와 개인사로 인한 마음고생에 한창 힘들었던 시절 생긴 잘못된 습관인 폭식이 되살아났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갔고 죄책감에 24시간 굶었다.

떨어진 체력과 불어나는 체중에 운동 강도를 높였다.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갔고 특히 공복 운동을 시작 했다. 매년 5월은 개인적으로 힘든 달이다. 과거의 괴로웠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니 한동안 잠잠했던 패닉 어택이 두 번이나 다녀갔다. 온몸과 마음이 다시 무너졌다.



✅ 최근의 깨달음:

허리 디스크로 지난 6년간 인연을 이어온 교정 의사이자 마사지 원장님의 도움으로 내 몸상태를 함께 파악해나갔다. 가만 보니 폭식은 심리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공복 운동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뜩이나 나는 저혈압이 심한데 공복 운동을 했고 한 끼만 먹으니 몸은 늘 기아 상태였던 것이다.

지난 2주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생활 속 저강도 운동 늘리기(산책 등), 수영 강도 높이기(1km), 하루 두 끼 먹기, 공복 운동하지 않기 등을 실천했는데 컨디션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이제서야 내 몸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 지금 빠르게 좋아지는 건 지난 4년간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내 길을 포기하지 않은 덕이다.


남들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공복 운동이 그랬고 조금씩 자주 먹기가 그랬다. 노력의 시간들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과연 이거 해서 과연 될까 싶은 노력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이어갔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인연을 만나 여러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는 않았다.


공황장애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려움에 빠진 나는 오로지 스스로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팅게일 #You_Will_Never_Walk_Alone


P.S 사진은 지난 봄 온타리오 레이크에서 올해 들어 처음 본 요트들입니다. 반짝이는 호숫가에 띄워진 네개의 요트가 지난 4년간의 항해의 시간 같네요. 저의 시행착오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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