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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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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Sep 14. 2023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병가일기 #1

지난주에 그분이 다시 나타났다. 나에게 그분이란 증상을 말한다. 나는 공황장애 증상을 동반한 번아웃으로 병가를 냈고 나의 경우는 신체화 증상보다 정서적 증상이 심해 결국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올해 들어 증상이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주기적으로(그 주기가 길어지고 있긴 하다) 이렇게 한번 증상의 쓰나미가 찾아온다. 이번에는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 브레인 포그까지 한꺼번에 나타나 한바탕 행패를 부리고 갔다. 참 허무한 것은 일단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을까 아무 일도 아니고 오히려 게으름을 피운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게 참 함정이고 2년이 되어도 증상을 겪을 때마다 여전히 헷갈린다. 특히 나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고 작게 느껴지고 못나게 느껴지는데 모두가 다 어느 정도 불안감을 안고 견디며 극복하며 살아가는데 왜 나는 뭐가 이리 유별나서 그렇게 못하나라는 한심한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은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그 시간들이 지나고 증상이 잦아들기 시작하면 내가 또 증상 쓰나미에 한 번 당했구나. 에고 고생 많았네 토닥토닥할 여유가 생기는데 그러나 그 시점에서는 그런 나 자신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다. 내가 겪은 증상을 정리하면 불안 초조함의 정도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끔 만들고 심할 때는 가슴 두근거림 같은 신체화 증상을 발전한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라는 것은 아주 쉬운 일 예를 들어 평소에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사소한 집안일 및 아이를 위한 작은 일처리 조차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당연히 글쓰기도 어렵다. 그리고 브레인 포그 현상은 머리에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며 생각을 할 수 없고 판단력을 떨어뜨린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불안감과 초조함에 몸은 바짝 긴장한 상태고 머리는 돌아가지 않으니 매우 불편하다. 이런 상태가 될 때마다 나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습관처럼 자기 비난을 하게 된다. 내가 어렵게 세운 루틴조차 하기 힘들다. 책에 집중이 안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증상에만 곤두서게 되어서 20분짜리 코미디 미드나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그런데 이런 짧은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전두엽 살살 녹는 느낌과 멍청해지지 않을까라는 괜한 또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이번에는 평소보다 큰 죄책감을 갖지는 않았는데 지난번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니 증상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살아남을 방책으로 노력하고 있는 건데 왜 죄책감을 느끼냐며 오히려 그런 영상 안 보면 증상에 압도되어 더 괴로울 가능성이 더 큰데 적어도 그건 재미라도 주잖아! 라며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시원하게 말씀해 주신 덕분에 사고회로는 자연히 죄책감으로 갔지만 크게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는 증상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루틴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운동 시간이 다소 늦어지고 평소 루틴처럼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하지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10분이라도 운동했다. 자책감과 죄책감이 들어 괴로울 때도 한편으론 나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인터넷에서 좋은 글들을 읽으며 긍정적인 마음을 일으키고자 노력했고 몸을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스케줄이란 게 많지도 않지만 그 와중에 한 번도 계획된 일정을 미루거나 어기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증상의 쓰나미는 여러 번 계속해서 나를 덮치겠지만 그럴 때마다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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