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병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Oct 05. 2023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

병가 일기 #2

If You’re Going Through Hell, Keep Going


지난 주말, 꽤나 오랜만에 강렬한 패닉 어택을 경험했다. 그전에도 수차례 크고 작은 패닉 어택을 겪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것은 2년 전 병가를 내게 된 결정하게 한 첫 번째 패닉 어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최근 들어 나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 불안초조함이나 브레인 포그 증상을 극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예전보다 좋아지고 있었기에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강렬한 패닉어택이 당황스러웠고 나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앞서 언급한 불안 초조, 자기 비난의 목소리 및  브레인 포그 같은 증상들은 증상 자체들을 못 오게 막을 수는 없지만 루틴을 따른다거나 충분한 휴식, 긍정적인 생각 하기 혹은 신체활동 늘리기와 같은 것들로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물론 이것들도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지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감사하게도 병가 중이고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증상들은 대체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이기에 겉으로 티가 안 날 수도 있다. 심한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예민함과 짜증이 늘어나는 정도다. 나는 대체적으로 가족들에게 이런 주기적인 증상들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고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이렇게 조절 가능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패닉 어택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패닉어택은 조절을 하고 싶어도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일단 그 상황에 이르면 다른 것이 잘 안 보인다. 블랙홀에 확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런 나의 모습에 당연히 남편도 아이도 오랜만에 멘붕이 왔다. 그게 더욱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나 스스로도 이런 증상들이 여전히 헷갈리는데 가족들은 오죽하랴. 너무나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이 둘은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다. 남편도 나를 달래느라 고생이 많았고 딸아이는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뎌줬다. 가슴 아픈 동시에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이 둘이 아니었으면 정말이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들어 나는 모든 인간관계를 멈췄다. 심지어 25년 지기 베프와도 연락을 중단했는데 나 자신이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서 어떤 관계도 건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시간을 나 자신에 대해 깊이 파고들며 자신을 돌아보고 감정을 기록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 이외에 오롯이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마치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도록 노력해 왔는데 이번 패닉 어택 중에 처음으로 패닉 어택을 겪고 있는 나 자신과 그것을 지켜보는 나로 분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극심한 공포와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라? 가만있자 이 느낌과 상황이 과거의 특정 상황과 어쩐지 닮아있네!? 

 

그간 나 자신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결국 이 모든 증상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리해가고 있었고 회복 방향을 그렇게 잡고 노력하고 있었다. 패닉 어택 또한 과거의 특정한 상황에서 온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경험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니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특정한 상황이 뭔지 알게 되었고 그간 이해가 안 되었던 과거의 일들도 순식간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알게 되었다고 해서 증상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거나 상태가 갑자기 호전되진 않음을 안다. 뭐든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증상에 주말은 엉망이 되었다. 우리 세 식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뜩이나 새 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딸아이는 주말 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월요일에 학교를 가지 못했다. 덕분에 아이와 둘이 하루종일 수다를 떨며 영화도 세편이나 내리 보며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는 이런 강한 증상이 한 번 오면 일주일, 아니 한 달 이상 회복하지 못한 적도 있다. 루틴은 엉망이 되고 하루하루를 억울해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과거의 불행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자기 비난이나 질책, 비난은 마치 내 증상에 맞서고 이해하고 마치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진 않는다. 왜냐하면 실컷 그렇게 시간을 보내보고 그것의 끝까지 가봤기 때문이다. 그 끝에는 정말인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 쓸모도 도움도 안 됨을 깊이 안 뒤 멈췄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저 멈추기만 하면 됐었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적어도 답을 알고 있다. 당연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하고 비난과 자책이 올라오지만 그 생각에 물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패닉어택이 훑고 간 자리를 수습할 것은 수습하고 주섬 주섬 일어나 다시 가던 길 가면 된다. 


나는 잠시 넘어졌을 뿐이다. 넘어졌다고 해서 걷는 방법을 모르거나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이제 걷는 방법과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고 있다. 넘어진 상처로 바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잠시 앉아서 쉬거나 회복하면 된다. 그리고 일어나서 가던 길 다시 가면 된다.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옥에 있을 때 그곳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그저 계속 걷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