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병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Oct 05. 2023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병가일기 #3

얼마 전 겪은 강한 패닉어택이 나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패닉어택에서는 증상을 겪고 있는 나와 그것을 관찰하는 나로 분리할 수 있었는데 공포감과 조절이 안 돼 힘이 드는 와중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증상이 잦아질 때 즘 나는 홀로 우두커니 지하실에 앉아 찬찬히 그 상황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때와 비슷하다. 부모님께 받은 특정한 상처. 그 상황이었다. 그 특정 상황은 내가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에 오기 전까지 반복되었고 심지어 4년 전 캐나다로 떠나오기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억울함이 해결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나는 별 탈 없이 오히려 쿨하게 잘 지내다가도 사소한 일로 약간의 억울함을 느끼면 크게 반응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학창 시절 동안 친구들과 어느 정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러다 문제가 된 것은 대학에 가서 이성친구를 사귀게 되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연인 관계는 친구보다는 더욱 가까울 수밖에 없는데 어찌 보면 부모님 다음으로, 부모님만큼 가까운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연인 간에 당연한 생활상의 작은 오해조차 나에게는 견디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미 헤어졌기 때문에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연이 아니라 여겼다. 그리고 나는 결혼에 한 번 실패했는데 다른 이유로 헤어졌지만 당시에는 갈등이 고조된 상황이니 그런 나의 약간 과장된 반응들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지금의 패닉어택과 비교해 그때의 반응들은 패닉어택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 지금의 남편은 나의 평생의 진정한 사랑이다. 살면서 이만큼 사랑해 본 사람이 없고 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는 나를 보듬어주고 가장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아주 고마운 사람이다. 나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아이를 한없이 사랑하며 아픈 나를 보듬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며 자기 일도 열심히 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다.


내가 이런 관계들을 설명하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병가기간 전을 포함해 일어났던 거의 모든 강렬한 패닉어택의 트리거가 남편이기 때문이다. 딸아이도 다른 사람도 다른 특정상황들도 아닌 남편과의 말다툼에서 늘 발전했다. 모든 다툼이 패닉어택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패닉어택의 트리거는 남편과의 싸움에서 늘 시작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부부간의 다툼은 피할 수 없다. 같이 살면서 크든 작든 싸움을 하게 되고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의 싸움도 대부분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에서 온다. 이따금 남편과 대립하는 의견을 보이다가 종국엔 패닉어택이 오는 것이다. 그것이 항상 랜덤이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패닉어택이 올 때마다 늘 자괴감에 휩싸였다. 아프기 전에는 남편과 의견 불일치가 있을 때 속상하긴 했지만 패닉어택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많이 울고 속상해하는 것으로 늘 그쳤다. 그전 남자친구들이나 전남편과는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인연이 아니었기에 나의 그런 과장된 반응(지금보다 훨씬 반응이 약하기도 했지만.)이 당연한 거라 여겼는데 지금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남편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결국 나의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런 좋은 사람과의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에 이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나는 성격이 이상하구나. 나는 왜 이럴까 항상 결국 내가 문제였구나 등의 결론으로 이어져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나의 이런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거기서 나는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더욱 자괴감을 느끼는 양가의 감정을 느끼곤 했다.


생각이 정리가 되니 그간의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꾸준히 겪은 트라우마로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고 특히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쌓여서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겪는 의견의 불일치를 힘들어하는 사람일 뿐 나의 성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동안 나를 향해 겨눴던 자기 비난의 화살을 모두 거두고 나를 위로해 주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미 원망할 만큼 원망해서 남아있지 않거니와 그 감정들이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그들을 용서했다. 스스로 용서의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용서하는 것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은 그저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아무 잣대 없이 바라보고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며 나를 보듬고 일으키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부모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내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나이 40 먹어 부모님 때문에 힘든 것이 매우 창피하다고 말하면 이 스윗한 인도 할아버지 의사샘은 '뭔 소리야! 내 환자 중에 60대 환자도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에 여전히 힘들어해. 심지어 80대 노인도 있었어. 넌 애기야!!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준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