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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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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20. 2024

대인기피증 극복하기

병가일기 #4

본래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사람과의 교류에서 힘과 에너지를 얻었다. 

그러나 20대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이어진 반복된 실패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과 함께 겹겹이 쌓인 스트레스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었고 캐나다로의 이민과 곧 이어진 코로나사태로 내 삶은 한층 더 고립되었다. 

회사에 들어간지 1년만에 병가를 내고 여러 시도를 했다. 약도 먹어보고 운동도 하고 자료를 수집해 증상에 대해 연구도 해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인지과정 교육이란 것도 들어보고 한국도 다녀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도무지 좋아지질 않았다. 수개월간 지속된 약 부작용에 증상은 들쭉 날쭉했고 무엇보다 어떤 시도도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란 느낌에 참 답답했다. 갈수록 증상은 악화되었고 병가를 낸 지 1년이 넘어간 작년 이맘때즘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칠흑 같은 터널에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아니면 거꾸로 서 있는지 옆에가 만져지지도 않고 이게 터널이 맞긴 한 건지... 막막했다. 심한 우울감에 고통스런 날들이 지속되자 차마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죽을 생각까진 못했어도(심지어 그땐 그런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고역이었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사람을 만날 수 있기는커녕 마트 점원과의 짧은 대화도 힘겨웠다. 특히 밖에서 누구랑 몇 마디 나누고 오는 날에는 몇 날 며칠간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반복하며 평가했다. 내가 실수했나 좀 더 세련되게 말했어야 했는데 나를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올해 들어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운동도 독하게 하면서 악착같이 나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계속 두려웠다. 본래 그러지 않았던 나의 성격과 과거를 생각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면서 무엇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3년간 꾸준히 만나온 나의 커리어 코치인 Karen Floyd 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았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고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불편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되는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의 이야기에 Karen Floyd 은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해줬다. 

매일 아침마다 Loving-Kindness(자애)를 담은 확언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오늘 나와 교류하고 교감하게 될 모든 사람들, 상점의 점원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분명한 의도로 사랑을 보내고 시작하라고 했다. 

평소 자애 명상을 하고 있는 나에게 딱 맞는 조언이었다. 
Karen Floyd과의 세션을 마치고 그 길로 당장 확언을 시작했다. 그래 나는 그 상대가 미울지라도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잘되길, 행복하길 바란다. 적어도 그런 마음을 일으키고자 노력한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지언정 상대의 불행을 바란 적은 결단코 없다. 이렇게 분리가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Karen Floyd 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나만의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혐오를 하지 않기 위해 사랑을 보내는 대상에 나 자신과 가족들을 포함시켰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오늘 하루, 우주에서 귀하디 귀한 나 자신과, 나의 귀하고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비롯해 내가 오늘 하루 만나고 교류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전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의 이 의도는 정말인지 명확합니다. 나는 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의사소통 합니다. 상대는 나의 의도를 곧 알아차리고 나와의 대화를 즐기고 나를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경험한 딸아이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고 기다렸던 그 마음을 오늘 하루 만나고 교류할 모든 분들께 미리 그 사랑을 보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나고 교류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전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 가득 담고 하루를 시작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작한 지 며칠 후 내가 잠시 연락을 멈춘 어떤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자연스레 대화도 나눈후 집에 와서도 더 이상 그분과의 대화를 다시 곱씹거나 분석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신기했다.

또한 그동안 실수할까 봐 대화에 수동적이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신감과 용기도 생겼다.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하게 말할 수 있을까 노력하고 마트 계산대에서도 어쩐지 칭찬 한마디를 보태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의도대로 상대방의 행복과 건강, 안전을 바라며 대하니 뭔지 모를 여유와 당당함이 생겼는데 그것은 내가 실수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미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를 향해 사랑을 보냈으니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미리 마쳤다는 안도감과 행여 의도치 않게 실수나 오해가 생기더라도 곧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 어떤 상황에도 나에게는 상대방의 건강과 행복과 안전을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이 기도와 비슷한 확언 의식으로 아침을 맞은 지 8개월이 되었다. 나는 이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과거에도 나는 본래 정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의도를 갖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았다. 상대를 향한 순수한 사랑보다는 상대방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욕망으로 친절을 베풀며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고 잘 보이기 위해서 한 적도 많다. 이따금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의식은 남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나를 지켜주는 방패막이자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다. 오늘 하루 사람 관계에서 실수를 하거나 뭔가 잘 안 풀릴 때 이 마음을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다. 창피함이나 자책, 자괴감, 상대를 향한 미움 등 그게 무엇이건 이 의식은 사람과의 교류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에서 나를 지켜주는 부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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