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병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Jan 23. 2024

나만의 치료약 만들기

병가일기 #5

올 한 해 정말인지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90년대 팝송들부터 클래식, 뉴에이지, 뮤지컬, 락,  메탈까지 장르를 불문해 들었는데 내 귀에 즐거우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그중 내 마음을 건드리고 울림을 주는 음악은 하루 종일 들었다. 음악은 명상하듯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러 곡들 중 AWE 모먼트로 이끌어 주는 곡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는 해당 곡이나 해당 뮤지션의 음악을 한 달 내내 매일 두 시간 이상 들었다. 왜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들과 저녁 식사 후 다 함께 소파 모여 좋아하는 곡들을 함께 들으며 울고 웃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당 뮤지션들의 공연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이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함께 들었던 뮤지션의 콘서트가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여름 발칸지역의 노장 가수 Goran Bregovic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나이아가라에서 했던 백스트릿보이즈의 막내 멤버 닉 콘서트, 메탈리카 콘서트를 위해 2주 전에는 디트로이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달부터는 레미제라블 25주년 공연 실황에 꽂혀 가족들과 매일 공연 영상을 봤다. 한 달 이상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고 특정곡들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매일 들어도 새로웠다. 특히 장발장역을 맡은 Alfie Boe 의 "Bring him home"을 듣노라면 알 수 없는 황홀감과 감동에 휩싸여 매 번 눈물을 흘렸다. 곧 나는 Alfie Boe 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졌고 지난 11월 26일 런던에서 라디오 음악방송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클래식 콘서트에 그가 사회 겸 공연에 참여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게 런던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마침 아이 학교에서 하루 쉬는 날이라 4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토론토에서 런던은 서울에서 싱가포르 가는 거리와 비슷하기에 해볼 만한 옵션이었다.

그렇게 세운 여행 계획을 가족들에게 호기롭게 내밀었는데 정작 가족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각자 일과 학교 스케줄에 바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메탈리카 콘서트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피로도를 호소했다. 결정적으로 본국으로 곧 돌아가는 딸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가 마침 해당 주말에 있었다. 갤러리와 브리티시 팝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꼭 데려가고 싶어서 백방으로 설득했으나 되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고민할 즈음 나의 커리어 및 라이프 코치인 Karen Floyd 와의 세션에서 그녀는 이따금 명상 기법을 알려주는데 그날도 하나 알려주었다. 그것은 최근에 경험했던 기쁨을 떠올리며 가슴에 손을 얹어 그 기쁨을 다시 느끼고 그 일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Karen Floyd 와의 세션이 끝난 후 나는 최근 보험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테라피스트와의 첫 어세스먼트를 하러 갔는데 아무래도 내가 선택한 테라피스트가 아닌 보험회사에서 제공한 것이기에 나의 모든 상황이 보험회사에 보고 되기 때문에 마치 시험을 본 것만 같아 세션 내내 편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세션을 마치고 차에 앉으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이란 녀석은 작은 형태로 시작해 갑자기 들이닥쳐 나를 괴롭게 한다. 처음에는 뭉게뭉게 연기만 올라오는 수준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갑자기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심한 안개처럼 내 시야를 가린다. 이쯤 되면 알 수 없는 더 큰 형태로 발전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약간의 갈등상황의 트리거와 함께 패닉어택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나는 더욱 불안해졌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다. 해당 어세스먼트에서 내가 잘한 점을 생각하며 그 사태를 수습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중 문득 몇 시간 전에 카렌이 알려준 명상 기법이 생각이 났다. 최근에 경험했던 기쁨이라. 최근에 경험했던 기쁨은 내가 어릴 적 너무나 좋아했던 백스트릿보이즈의 닉 카터 콘서트에 딸아이와 함께 다녀온 일이었다. 그날 나는 나의 어릴 적 오랜 꿈을 이룬 셈이나 다름없었기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고 특히 콘서트가 끝나고 나이아가라폭포 앞에서 딸아이와 좋은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해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쁨과 내 꿈을 이룬 것에 대한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던 사실을 떠올렸고 즉시 그 기억을 소환했다. 그러자 기쁨의 감정이 불안감에 요동치던 내 가슴에 따스하게 번지면서 어떤 말로도 설득이 안되던 불안감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에는 이 불안감을 어느 망치로도 깨뜨릴 수 없는 마치 딱딱한 돌처럼 느꼈는데 사그라드는 과정을 보니 불안감의 실체는 그저 비눗방울 거품 같은 녀석들이 쌓여서 그간 내 시야를 흐린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이벤트를 찾아 누리고 느꼈던 기쁨의 감정을 불안감에 즉시 사용 가능한 강력한 치료제로 사용했던 경험은 정말인지 약을 더 이상 먹지 않고 있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유레카 순간이었다.

이로써 나의 불안장애나 공황장애의 경우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과 경험에 의한 트라우마로 시작된 것이기에 새로운 좋은 경험이야말로 나에게 훌륭한 치료제가 되겠다로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새로운 좋은 경험들로 채워나간다면 정말인지 극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렇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좋은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저 앉아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하거나 그저 운을 바라며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좋은 기억을 만들어야 되겠다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런던을 꼭 가야만 했다. 불안감이나 공황이 올 때 즉시 꺼뜨릴만한 나만의 치료제를 수확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인기피증 극복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