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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30. 2024

내 안의 비판과 조소의 목소리 끄기

병가일기 #6 반대 증거 찾기 

새해가 된 첫 주 문득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12월 여행에서 돌아온 후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며 나는 그간 내 마음속에 쌓여 있었던 이야기들을 말 그대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저 내 안에 콕 박힌 것들을 시원하게 쏟아내고 비우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들이 감사하게도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관심이 당연히 기분 좋고 행복했지만 그것이 나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그저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었기에.

그런데 어느 정도 쏟아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달리듯 쓰던 글쓰기에 심신이 지쳤는지(아마 둘 다겠지) 속도도 느려지고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갈까 고민도 되고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반응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한 번 의식되니 많은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 소재를 쓸까? 그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아니면 별로일까? 하 뭐 쓰지. 뭘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지?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잠깐!!! 멈춰!!! 

"네가 글을 쓰려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시작한 이유가 뭐야? 너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관심받으려고 글 써?"

대답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가 뭘까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한 편으로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마치 전문적인 작가가 할 법한 고민인 거 같아 감사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만큼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뜻이니까. 

####### 
여기까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하나 더 다른 것과도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바로 부모님의 목소리. 

나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나를 향해 조소를 담은 비난을 많이 하셨다. 예를 들어 부모님 외에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 하지 않았던 그런 말들. 

통통했던 사춘기 시절 옷을 사러 가면 어머니는 
"우리 애가 많이 뚱뚱해요. 여기 우리 딸 맞는 옷 없죠? 에혀 애가 이렇게 살을 찌워가지고서는. 야! 여기도 없을 거 같다 나가자."
"넌 성격이 왜 이렇게 우왁스럽니? 그러니 네가 왕따를 당하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그 사람들이 네가 잘나서, 네가 능력이 있어서 널 쓰는 줄 알 거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그딴 일 해서 뭐 할래? 정교사가 되어야지 쯧쯧"

이혼하게 되었을 때는
"애 딸린 이혼녀로 이제 어떻게 살래? 너는 이제 흠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너는 우리 집안에 망신이고 씻을 수 없는 오욕을 줬다."

어느 날은 부모님과 다 함께 어느 절에 다녀오다가 아이를 업고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런 나와 아이를 보고
"야 잊지 마라. 네가 업은 게 바로 니 업덩어리다."

등등 그 외 수많은 가슴에 피멍이 들만한 말들을 들어왔다. 

부모님의 모진 말은 논외로 하고 가장 큰 문제는 이 말들이 내 인생 전반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에 온 후 내 주변에는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 주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이들의 좋은 말보다는 끝내 나의 핏줄인 부모님의 말에 공감하고 동의해 버렸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 남들은 남들일 뿐이고 결국 부모님의 말에 한 표를 던졌다. 그렇게 내가 어렵게 찾은 기회들도 결국 그런 시각과 말들에 밀려 추진력을 잃기 일쑤였고 그렇게 나에게 온 기회들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난주 나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에 부모님의 비난의 목소리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던 것이다. 

"너에게 반응해 주는 사람들을 진짜로 믿니? 그러니까 네가 어리석은 거야. 그들이 너에 대해 뭘 안다고. 네가 진짜로 글을 잘 써서 그런다는 착각은 말아라.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야 원." 

그간 많은 상황에서 이런 목소리와 관점과 싸워왔다. 이것이 내가 했던 지난 5년간 했던 상대 없는 전쟁이다. 지금은 적어도 이 목소리들과 격렬한 디베이트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좋아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 생각들과 한참을 싸우다가 링크드인 Tyson Junho Moon님의 새해 작심삼일 관련 포스팅을 보고 그래, 이게 새로운 일도 아니고 그냥 하던 이야기나 마저 쓰자고 결심하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올렸다.

그랬더니 웬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변함없이 많은 분들께서 귀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관심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귀한 피드백은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는, 때 되면 올라오는 부모님의 환청을 끄기에 도움이 되고 있다. 반대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테라피스트 세션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의 목소리와 나의 반응은 정상적이거나 보통의 반응은 아니라고 했다. 정상이 아니란 말에 나는 크게 안도했다. 다시 한번 그렇게 반대 증거를 찾았다.

이렇게 한 바탕 마음의 소동이 지나갔다. 이번에야말로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목소리와 관점에 압도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거나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어렵게 찾은 이 글쓰기가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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