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머무르는 일이 없다
서울에서 판교로 이사온 지 햇수로 2년째다.
우스갯소리로 한 번 서울 밖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 때문에 처음에는 희미한 불안함 같은 게 있었는데, 또 살다 보니 '견고한 평화로움'이 주는 매력이 있다. 최근에는 일이 있어 서울에 올 일이 많았는데 워낙 이태원, 한남동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터라 웬만하면 약속도 이 근방에서 자주 잡곤 했다.
시간이 남으면 좋아하는 카페인 앤트러사이트에 들린다. 여기를 들리는 이유는 첫 번째는 시간을 떼우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사람 구경을 하기 위함이다. 이 동네는 원래 멋쟁이들이 많은 곳이지만 소위 말하는 '힙스터'들은 이 곳을 아주 편하게 들락날락하는 듯 올 때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개인적으로 일본 젊은이들의 스타일을 멋지고 쿨하다 생각했는데 최근 방문한 일본 시부야의 젊은이들은 10년 전보다 조금 더 순한 맛(?)이 된 것 같았고 우리 나라 젊은이들은 점점 마라 맛(좋은 의미로)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느꼈던 것은 개성 있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순 없지만 적어도 겉모습만으로 보이는 개성으로만 얘기하자면, 여기가 LA의 실버레이크인지 베를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스타일이 재밌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너무 오래 시골에 박혀있었나보다. K팝이나 K드라마의 팬이 아닌 사람으로서 외국인들의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연예인 계정에 달리는 댓글과 BTS의 시상식이나 토크쇼에서의 활약 정도로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그리고 서울이 매력있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All palaces are temporary. 모든 성은 영원하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굳건한 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힘(power)은 절대 한자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에서 전쟁을 치뤘던 많은 유럽 국가들은 전쟁 직후 황폐화된 자국을 재건하기 위해 미국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마셜 플랜). 그런데 수 많은 젊은이가 죽고 당장 자국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었던 국가들은 그 돈으로 식민지부터 우선적으로 재탈환했다. 도덕적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한 잔혹한 역사임이 틀림없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식민지를 두곤 했다. 심지어 3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참혹한 시간을 보냈던 인도네시아 또한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에서 독립 선언을 하자마자 군대를 몰고 쳐들어가서 수 십 년간 식민 지배를 했다. 그것이 그들이 힘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제는 물리적인 힘으로 다른 나라를 위협하려 하면 세계적으로 고립되거나 왕따가 된다. 그만큼 국가와 국가는 서로의 몸통과 팔다리처럼 얽히고 또 엉킨 존재가 돼버렸다. 그 어떤 나라의 안보도 위협당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 경쟁력을 갖고, 보고 싶고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 자본을 가지는 방법밖엔 없다. 매력은 누구를 해치거나 위험하게 만들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가질 수 있는 진정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