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편지
눈부신 5월, 잠이 쏟아지는 2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가 세수를 했어요. 그래도 눈은 여전히 멍하게 깜빡거렸습니다. 다음 시간은 담임선생님 국어 수업. 턱 아래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훔치며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려고 서랍에 손을 넣었습니다. 순간, 조그만 종이가 손끝에 닿았어요. 고개를 한껏 숙여 서랍 안을 들여다봤어요. 곱게 접힌 편지가 보였습니다. 예뻤습니다. 행운의 편지인가.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펼쳐보고 말았죠.
경빈아!
뭐야, 경빈이 꺼잖아. 내 짝꿍에게 온 편지였어요. 보낸 사람. 이지은. 끝까지 읽을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남의 편지잖아요. 얼른 다시 접었습니다.
우리 반에 유난히 남자다운 친구가 있었어요. 짧은 스포츠 머리에 까만 뿔테 안경, 거무스름한 피부에 떡 벌어진 어깨. 체육 시간이면 날아다녔어요.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인기도 많아서 매일 책상 서랍에 선물이 가득했죠.
다음 쉬는 시간, 지은이를 불렀어요. 편지가 내 서랍에 잘못 들어왔다고 말했죠. 첫 줄만 봤다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지은이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어요. 자신이 경빈이를 좋아한다고, 친해지고 싶어 편지를 썼다고요.
그 일로 지은이와 가까워졌습니다.
지은이는 학급에 봉사할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꼭 저를 돌아봤어요. 빨리 손 들으라고, 같이 하자고. 말 대신 고갯짓으로, 눈을 찡긋하며 저를 불렀죠. 혼자였다면 절대 안 했을 겁니다.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고, 솔직히 귀찮기도 했거든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미적거리면서도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까지 친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복자여자고등학교, 지은이는 천안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헤어지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딱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은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있었어요. 천안 터미널 커피숍에서 만난 우리는 다시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그 시절로, 그때 그 교실로. 3시간이 30분 같았습니다. 헤어지면서 두 손을 꼭 잡았어요. 자주 만나자고, 건강하자고.
그리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냥 그렇게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어요.
오늘, 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지은이가 떠올랐습니다. 괜스레 아련해졌어요. 그때 그 교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잘못 전해진 편지 한 장이 아니었다면, 그 친구와의 추억도 없었겠죠. 가끔 의도하지 않은 일이 좋은 추억을 선물하기도 하네요.
누구에게나 그리운 시절이 있을 거예요. 추억 속에 그리운 사람이 있을 거고요. 내 기억 속 지은이, 생각하면 잔잔한 봄볕에 춤추는 아지랑이 같습니다. 지은이 기억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오늘도 지나면 추억이 되겠죠. 추억이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하던데요. 나는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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