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동물농장'을 읽고
드디어 나왔다! 내 인생 최고의 책! 세계문학전집 정주행 1차 시도 때는 과거에 읽었던 책을 재탕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동물농장>을 건너뛰었다. 하지만 내 본심은 '다시 읽으면 예전만큼 좋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 1위 자리를 내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가 <동물농장>을 처음 만났던 건, 대학생 때였다. 창밖이 캄캄한 저녁에 단과대 도서관에서 엄청나게 몰입해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책을 덮는 순간 이건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했다(마치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아!'와 비슷한 운명의 데스티니(?)였으려나??ㅋㅋ). 그리고 그때 이후로 <동물농장>은 내가 손수 앉혀 준 왕좌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인데 여전히 1위라는 게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1위에 근접할 뻔한 책은 몇 권 있었기 때문에 마냥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실 내용이나 감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현실=시궁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만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기쁨과 위안을 얻고 싶다. 이는 판타지적 회빙환이 아니라, 타인의 일상 에세이여도 좋으니까 내가 인지하는 부정적인 현실 외의 세계로 내 정신이 차원이동하고 싶은 소망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나 범죄 장르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회피하게 된다. 해당 매체에 몰입할수록 현실이라는 시궁창 위에 괴로움을 한 숟갈 더 얹는 형태가 되어버리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을 멱살 잡고 끌어당겨 <동물농장>을 인생 최고의 책이라 꼽게 만들다니, 조지 오웰 작가님은 대단하십니다! 엄지 척!
내가 <동물농장>을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여기는 이유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풍자우화의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적용 가능한 진리를 이해하기 쉽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동물농장>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들 <카탈로니아 찬가>와 <1984>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 책들에서 <동물농장>만큼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앞서 말한 내 취향을 뛰어넘어서까지 작품에 빠져들게 할 만한 요소는 <동물농장>만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존즈 씨가 운영하던 메이너 농장에서 착취당하던 동물들은 어느 날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내쫓게 된다. 그들은 '동물농장'이라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일곱 가지 계명을 세워 평등한 나날을 보내는가 싶었지만,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무기로 돼지들이 점점 특권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수퇘지 나폴레옹이 경쟁자 스노볼을 모함하여 내쫓고 독재하게 되면서, 점차 계명은 변질되고 착취는 이전보다 더 심해진다. 결국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과거에 나는 순전히 자연스러운 이끌림에 따라 이 책을 손에 집어 들었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고, 재미와 만족감에 가슴이 벅찼으며, 책 후반에 나오는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정치 상황을 그렸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동물들 하나하나 매칭되는 인물이 있었다니!! 작가님, 대단해요!!). 반면 내 친구는 이 책을 과제로 읽었는데 그저 그랬다는 평을 내려서, 역시 무언가를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읽었을 때는 과거에 느꼈던 반짝거리는 흥분과 놀라움보다는 차분한 씁쓸함이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 지배층인 돼지의 착취보다는 복서를 포함한 다른 동물들의 맹종에 더 눈길이 갔다.
조지 오웰은 <자유와 행복>에서 에프게니 자미아친의 소설 <우리들>을 인용하며 '마지막 혁명'이라는 것은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모든 혁명은 반드시 타락한다'와 같은 비관론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적이라 여겼던 사회가 비극적으로 오염되는 상황을 보여주며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물들은 처음 세웠던 일곱 가지 계명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글을 배워서 바뀐 내용을 정확히 알고 반론을 펼치려 하기보다는, 스퀼러의 궤변과 선동에 놀아나며 도리어 자신들의 과거 기억을 의심한다. 이는 동물들의 무지와 맹목적인 순응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하거나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윽고 슬픈 외국어> 리뷰처럼 나를 둘러싼 것의 자명성에 의문을 품을 때, 그리고 한 발짝 나아가 대중이 지도층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할 때 비로소 혁명의 부패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동물농장>은 집단, 사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독자들을 일깨워줄 유리창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