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6가 특징인 인터넷 공유기.
* 얼리어답터에 2019년 4월 15일 발행된 글입니다.
속도에서 커버리지로, 다시 속도로. 네트워크 시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물망처럼 촘촘한 메시(Mesh) 기술을 강조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조사 대부분은 메시 기술을 도입했고, 이제 기술의 원숙을 바랄 지경이 됐다.
그다음은 차세대 와이파이, 와이파이6(WiFi6, IEEE802.11ax)다. 기존 와이파이5(IEEE802.11ac) 규격보다 안정성과 속도를 대폭 강화한 차세대 와이파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시즌에 시험 서비스를 시작해 지난가을 상용화도 이뤘다.
그동안 공유기 제조사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전 뉴스로도 접한 넷기어 나이트호크 RAX80 공유기(이하 RAX80)가 대표적.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을까? 넷기어 최초로 와이파이6를 지원하는 공유기, RAX80과 와이파이6를 살펴봤다.
공유기 제조사마다 뚜렷한 디자인 언어가 있다. 넷기어도 예외는 아니다. 넷기어는 커버리지를 강조한 오르비(Orbi) 시리즈는 흰색 타워형 디자인을 채택하고, 빠른 속도를 강조한 일반 공유기는 검은색 각진 디자인에 여러 안테나를 장착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그러나 RAX80의 디자인은 기존 넷기어 디자인을 기억한다면 고개를 갸웃할 디자인이다. 많고 많은 안테나는 날개 안으로 숨었고, 각진 디자인은 유선형으로 탈바꿈했다. 마치 스텔스 전투기를 보는 듯하다.
본체 전면부터 상단으로 이어진 통풍구에서는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빠르게 배출한다. 본체 뒷면에는 USB 3.0을 지원하는 단자 2개, LED를 켜고 끄는 버튼, 네트워크 포트 5개가 있다. 바닥에는 벽걸이용 홈이 있으나 벽에 설치하기 좋은 디자인은 아니다.
RAX80의 특징은 와이파이6와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완전히 새로운 규격인 만큼, 그 규격 자체가 제품의 특징이라는 소리다. 와이파이5와 와이파이6의 차이는 속도, 동시접속 수를 꼽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속도다. 와이파이6는 이론상 최대 9.6Gbps를 낼 수 있다. 기존 와이파이5의 6.9Gbps보다 빠르다. RAX80은 2.4GHz, 5GHz 대역에서 1.2Gbps, 4.8Gbps를 지원해 최대 6Gbps 속도를 낼 수 있다.
동시 접속 수는 OFDMA(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 Access)라는 기술로 설명할 수 있다. 조금 쉽게 데이터가 차를 타고 다닌다고 가정하자. 기존까지는 차선마다 1대의 차량이 이동해야 했기에 차가 늘어나면 차선이 혼잡해졌다. 그래서 차선을 확장하고, 쾌적한 차선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와이파이6의 OFDMA는 아예 차를 오토바이로 바꿔버렸다.
OFDMA는 와이파이 채널을 RU(Resource Unit)이라는 더 작은 하위 채널로 나눠, 공유기가 데이터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의 용량, 커버리지, 효율성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RAX80의 가격은 50만원대. 단일 라우터의 가격으로 상상하기 힘든 가격이다. 일반 가정용 소비자가 선택하기에 쉬운 가격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와이파이6를 제대로 쓰려면 인터넷, 그리고 단말기도 필요하다. 현재 공식적으로 와이파이6를 지원하는 단말기는 삼성 갤럭시 S10 5G 모델이 유일하다.
인터넷 회선도 이를 받쳐줘야 한다. 흔히 10기가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회선을 이용해야 한다. kt는 kt 10기가 인터넷, SK텔레콤은 기가프리미엄 X10 등의 상품을 내놓았다. 현재 설치할 수 있는 지역도 제한적이거니와 기존 기가 와이파이 요금의 두 배 이상인 8만원대 가격을 갖췄다.
약간의 꼼수도 있다. 멀티 기그(Multi-Gig)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 기가급 외부 인터넷 회선을 두 개 동시에 RAX80에 연결하면 WAN 포트 통합을 지원해 최대 2Gbps 대역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면 기가급 인터넷 두 회선 비용만 내면 된다.
물론, 반대로 데스크톱에도 두 개의 랜선을 꽂을 수 있다. 대신 데스크톱에 이더넷 포트가 두 개 이상 있어야 하고, 링크 어그리게이션을 지원해야 한다.
RAX80은 빠른 인터넷, 그리고 여러 기기와 데이터 전송을 위해 1.8GHz 쿼드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일반 라우터에서 보기 힘든 고성능이다. 여기에 넷기어에서 지원하는 앱 지원 등 다양한 편의성, USB 단자를 이용한 저장 장치 외부 접속 지원은 여타 공유기와 차별화된 부분이다.
그러나 와이파이6가 막 도입된 시점에 이 기기를 선택할 일반 소비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당장 RAX80을 설치했을 때 이점이 있는 곳도 있다. 평소 과밀한 접속으로 인터넷 품질이 떨어지는 사업장 등에선 RAX80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결국은 비용 문제다. 현재는 소수의 얼리어답터나 기업체 등에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와이파이6를 위한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았고, 비용도 비싸다. 이후 통신 인프라가 좀 더 갖춰지면 설치 비용은 자연스레 낮아질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넷기어 RAX80은 새로운 와이파이 시대를 여는 선언적인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글을 잘 마무리하자마자 넷기어에서 와이파이6를 지원하는 보급형 공유기, 나이트호크 RAX4를 발표했다. RAX80보다 전반적인 성능을 낮췄고, 최대 속도를 3Gbps만 지원하는 등, 전반적인 성능을 덜어냈으나 OFDMA 기술은 그대로 적용됐다. 가격은 199달러(한화 약 22만6천원)로 이 제품을 노려보는 것도 좋겠다.
매력적인 기술이지만, 지금 반드시 필요하진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풀어쓰면서 엄격하게 정의하지 못한 게 있다. 속도와 대역폭 이야기.
속도와 대역폭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같은 개념은 아니다. 속도는 초당 데이터의 전송량을 의미하는 수치고, 대역폭은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드는 주파수의 넓이를 뜻한다. 차량과 차선의 예를 다시 들자면, 속도는 차량의 속도를, 대역폭은 차선의 넓이를 뜻한다. 다만, 속도와 대역폭은 일반적으로 비례하기에 이 둘을 혼재해서 쓰고, 이 리뷰에서도 혼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