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올라프 Sep 16. 2021

내가 에세이를 사랑하는 이유

에세이 예찬


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 서점에 들르곤 한다.


왠지 모르게 서점에서 나는 책 냄새는 우울했던 기분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누군가에겐 쇼핑몰, 카페가 일상 속 탈출구겠지만 나에게는 서점이 그렇다.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도 살펴보고 가끔씩 잡지 코너도 훑어보지만, 마지막으로 내 손길이 닿는 곳은 언제나 에세이(essay) 진열대이다.

한참 재테크에 빠졌을 때는 비즈니스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은 적도 있지만, 결국 마음이 힘들 때 찾게 되고 읽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책 종류는 에세이다.


에세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준 건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재작년 12월, 난 나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오는 안 좋은 기억에 감정적으로 취약해져 있었다.

나는 여느때처럼 나를 위로해줄 에세이집을 찾았다.


이병률의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에서 마주한 다음 구절은 내 마음에 강력한 연고처럼 작용했다.

내가 듣기 원하던 말을 멋진 작가가 나를 위해서 해준 느낌이었다.


상처든, 남이 들춰낸 단점이든  씻어내야 한다. 씻어내는 것은 닦아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덜어내는 것이기도 하고,  세포의 뿌리를 잘라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씻어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곳에  기운이 돋는다.  씻어내지 않은 부위는 새로운 살이 붙기에 깨끗하지 못하다. 이전의 것들과 적당히 섞여 좋은 것이 생겨나더라도 온전히 좋은 것일 수가 없다. 군내를  씻어버리지 못하면 군내는 계속해서 따라오지 않겠는가.

트라우마가 나를 지나가면서 남긴 지문을 슬쩍이라도 몸에 남겨서는  된다."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P14~15


마음이 정말 힘들 때는 명쾌하고 이성적인 답이 필요하지 않다. 당장 나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내가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듣고 싶다. 사실상 '답정너'인 것이다.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가끔 위로인지 훈계 섞인 비판인지 모르겠는 말을 듣고 기분이 이상해질 때가 있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에세이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마음에 맞는 에세이 한 편은 나를 ‘제대로’ 위로한다.


에세이는 일상 속 오아시스이자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베스트 프렌드이다.


에세이는 메마르고 억눌려있던 순수한 감정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래서 에세이는 가뭄 같은 현실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현실에 치여 감정이 건조해질 때 읽게 되는 에세이는 사람을 다시금 사람 냄새가 나게끔 만들어준다.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감수성 지수를 높여준다. 그래서 에세이는 사람 냄새 충전소이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서 본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100% 똑같은 경험은 아니지만 에세이 속 경험의 공통분모에서 사람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받는다.


'나 혼자만 이런 힘듦을 겪는 게 아니었구나',

‘이 작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구나’

다르지만 비슷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우리는 각자의 삶과 경험에 대입하면서 주관적으로 읽는다.


이렇듯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오독(誤讀)하는 즐거움이 있다.


#에세이 #산문 #수필


작가의 이전글 하늘에 계신 친할아버지께 띄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