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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Mar 10. 2022

나의 말로 너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때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이 그만....



누구든 한 번쯤은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버럭 화를 내거나 마음 아픈 말을 뱉어놓고 이런 변명을 해본 적이 있을 거다.


화낼 당시에는 나의 입장만 생각하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후회될 때가 있다.


나는 회사 후배에게 화가 섞인 직설적인 말로 코칭을 하다가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다.


나는 지점에서 신입행원 A의 멘토 역할을 담당한 적이 있다. A 직원은 신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일처리 속도가 매우 느려서 '주토피아의 나무늘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사실 입행 8개월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그 직원은 신입도 아니었다.)  


내가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우는 동안 고객님들께 예적금 만기 안내하는 전화 업무를 A직원에게 위임한 적이 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당장 모레가 만기인데 만기 안내 전화가 안 된 건이 10건이 넘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A직원의 느린 일처리로 창구에서 몇 배 더 많은 고객들을 응대해왔던지라 그 직원에 대한 나쁜 감정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휴가 복귀 첫날부터 10건이 넘는 전화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다.


결국 그동안 쌓였던 답답함이 폭발했고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일도 못하는 게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만 부리고 있어! 변명 좀 그만해!"라는 말까지 했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A직원이 '당신이 3일 전 만기 연락하라고 제대로 지시한 것도 아니면서 왜 난리야'라고 배 째라 식의 태도를 보였고 내가 지적하는 말에 미안하단 사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서로 피상적인 사과를 하고 언쟁을 끝내긴 했지만 관계는 틀어져버렸다.


지점장님까지 A직원의 역량이 딸린다고 말씀할 정도로 그 직원이 일을 정말 못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더 현명하게 코칭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내가 없는 동안 내 일을 대신 수행한 점에 대해 그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이후에 본론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3일 전까지는 수신 만기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직원이 정말 몰랐을 수도 있는 거니까.

'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대방 마음이 다치지 않게 같은 말도 부드러운 표현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말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유난히 오래가는데 이 에피소드는 내가 말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던 사건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화가 나있을 때는 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됐고 말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정리를 한 후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자고 다짐했다는 점이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말을 해야 한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답답함과 화를 모른다. 즉, 상대방에게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더라도 상대방이 나 화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나에게 일정 부분 잘못이 있는 일에 대해서조차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말을 들으면 마음에 생채기가 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고 그 상대방으로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면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1. 상대방은 내가 본인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전혀 모를 수 있다.


2. 내가 부드럽게 얘기를 한다고 해도 상대방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3. 말은 정말 최대한 가다듬어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글 주제에 맞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앞으로 나도 내가 하는 말의 무게를 인식하고 책임지고 부드럽고 예쁜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작지만 큰 결심

눈부시게 아름다운
흰 종이에
손을 베었다

종이가 나의 손을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도
피가 나다니
쓰라리다니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다짐해본다

세상에 그 무엇도
실상 가벼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들이
남을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종이에 손을 베고> [희망은 깨어 있네] [그 사랑 놓치지 마라 中]


사진출처: 설레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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