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울기만 하다 하루가 끝났다.
1년 가까운 준비를 마치고 어느덧 다음 주가 출국날.
우리는 미뤘던 산전검사를 받기 위해 서로 다른 산부인과를 내원했다.
사실 검사받으러 가기 전까지는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이전까지는 그냥 검사받는 거지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검사를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홀로 정자를 채취하는 거라 하지만, 진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홀로 방 한편에 들어가 정자를 채취해야 한다는 게 남사스럽다 느껴졌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의료 목적인 만큼 이상할 게 전혀 없다며 설명해 줬다. 그리곤 아내는 정 그렇다면 같이 가주겠다 했다. 하지만 같이 가준다는 게 더 이상하다 생각했고 마음을 다잡아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굳은 결심을 갖고 산부인과에 들어섰지만, 막상 검사 자체는 금방 끝났다.
방에 들어가기 전, 검사 결과는 이삼일 내 문자로 전달될 거라 안내받았다. 그리고 통 하나를 받았다. 방에 들어가 통에 정자를 담고, 그걸 복도 선반에 두고 집으로 귀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냥 방에 홀로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후 조용히 귀가하면 되는 거였다. 검사를 마치고 집을 나왔을 때는 미뤘던 숙제를 해낸 기분이 들었다. 마침 아내도 비슷하게 끝나 함께 집으로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린 호주에 가져가기 위해 주문했던 우리의 작고 소중한 장비를 언박싱했다. 바로 마이크다. 우리는 호주에서 일상을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려 했다. 호주 생활 크리에이터라는 야무진 꿈을 이뤄가기 위해 소형 마이크도 주문했다. 마이크가 잘 작동은 하는지, 어떻게 휴대폰과 연결해 녹음하는지, 마이크 테스트도 해보며 놀았다.
다음날 나는 카페를 갔다. 학원 일정도 모두 끝났기에 어디 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영어를 놓을 순 없기에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에 갔다. 사실 지난 1년간 시간이 남을 때면 항상 카페에 갔기에 관성처럼 카페를 갔던 것 같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산부인과로부터 전화가 왔다.
"OO님 맞으시죠? OO 산부인과입니다. 어제 정액 검사받으셨잖아요. 검사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고 나오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정자가 아예 없다는 걸로 나왔거든요. 정자 마릿수를 보여주는 칸에 아예 공란으로 되어 있어서, 이거 자세한 건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를 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내일 괜찮으시면 의사 선생님 진료 잡아드릴까요?"
휴대폰을 통해 전달받은 사실 하나가 순식간에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일단 진료를 잡아달라고 얘기했다. 통화 후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급하게 짐을 싸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기내용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방금 산부인과에서 전화 왔는데, 나 정자가 없다고 하네."
"그게 무슨 말이야?"
얘기를 들은 아내는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몸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단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날이 밝고 바로 정자 검사를 했던 산부인과를 찾았다.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초조함 뿐이었다. 무슨 결과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초조심만 가진 채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께선 차분히 결과를 설명해 주셨다. 남편분 몸에서 정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비뇨기과를 방문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얘기해 주셨다. 유명한 병원이라며 3 곳을 추천해 주셨다. 다음 주가 출국이라는 우리의 사정을 얘기했고, 의사 선생님께선 가더라도 정밀 검사를 받고 가길 추천하셨다.
이와 함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러 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남편의 몸에서 정자가 채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정자를 기증받거나 혹은 입양이라는 선택지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자,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소리 없이 흐른 눈물이 하나 떨어졌고, 이내 아내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조용히 티슈 한 장을 건넸다. 일단 추천해 준 비뇨기과 한 곳을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게 결론이었다. 나는 아내를 살피기 바빴다. 나에 대한 검사 결과였지만, 그냥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진 못했다. 그냥 아내에게 미안하고 마음 아플 뿐이었다.
진료를 마치곤 아내가 검사를 받았던 곳에서도 전화가 왔다. 그곳에서도 검사 결과에 대해 진료를 한번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병원은 도보로 멀지 않았다. 붉어진 눈시울이 정상으로 돌아올 틈도 없이 아내와 나는 또다시 다른 산부인과로 이동했다. 기다리는 내내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난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냥 아내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아내의 눈물은 진료실에 들어가도 멈추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결과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당황했다. 의사 선생님은 울 일 아니라고, 난소 나이가 좀 높게 나와서 연락드린 거라고, 자연 임신은 가능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내 상태를 말씀드렸고, 아내의 눈물에 이해해 주셨다. 그러곤 진료실을 나왔다.
병원을 나와 우리는 인근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음 주가 출국인데.. 무정자증 진단이라니..
아내가 속초에서 보여줬던 글들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를 빨리 만나기 위해 다짐해 왔던 그녀의 노력들을 단번에 엎어버린 것 같았다. 정성 스래 정리된 노력의 찻장을 나도 모르게 단번에 엎어버린 기분이었다. 아내는 목 놓아 울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얘기를 했다. 당장 다음 주가 출국이라 안 할 수가 없었다.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정신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출국을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출국을 미루기로 했다.
미룬 일정을 굳이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우리 사정을 얘기할 정신도 없었고, 또 정해진 일정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일단 미뤘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얘기해야 했다. 그래서 양가 어른들께 연락을 드렸다.
처가댁을 먼저 찾았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형제분께서 1층에 나와 계셨다. 우리는 고개 숙인 채 다가갔다. 우리 둘을 조용히 안아주셨다.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아내도 계속 울었다. 그러곤 집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며 울지 않아야지 생각했다. 뭘 잘한 게 있다고 우냐며 혼자 다그쳤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전하는 내내 나는 죄송하다며 울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둘만 있으면 된다며 위로해 주셨다. 본가에서도 우리는 울며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께서는 말없이 토닥였다.
아내와 이런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게..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그렇게 울기만 하다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