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기는 일렀다.
하루 종일 우리 가족은 눈물바다였다.
아이를 그토록 바라던 가정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기는 일렀다.
무정자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먼저, 정자가 나올 관이 없어서 배출이 되지 않는 폐쇄성
그리고 정자가 생성되지 않아 나오지 않는 비폐쇄성
그 밖에 유전적 원인으로 인한 무정자증이 있다.
위 경우들을 모두 알아본 결과, 절대라는 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NEVER SAY NEVER
폐쇄성은 정자가 원래 있으니 문제가 없고,
비폐쇄성도 소량이라도 Micro TESE라는 수술을 통해 직접 채취하는 경우가 있고,
유전적 이슈로 인한 무정자증도 수술을 통해 임신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좌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비뇨기과를 찾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첫 비뇨기과 방문이다.
우리는 전날 전화로 진료를 예약했다.
진료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조급함 때문인지 너무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병원 안은 꽤나 조용했다.
후에 알고 보니 오전에는 주로 수술이 진행되었던 지라, 진료 환자가 없던 것이었다.
아무튼 너무 일찍 와버린 탓에 우린 일단 등록만 해놓고 근처 카페로 발을 옮겼다.
그러곤 한 1시간쯤 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다시 또 대기 30분.. 그렇게 아침 시간을 기다림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다 우리 차례가 왔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먼저 진료실로 부르셨다.
진료실에서 바지를 벗고 고환을 확인하셨다.
그러곤 아내를 불러 함께 설명을 해주셨다.
정밀 검사가 필요하고, 결과에 따라 수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우리는 바로 정밀검사 일정을 잡았다.
둘 다 백수였기에 가능하면 빠른 일정으로 검사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첫 번째 진료가 끝났다.
검사와 함께 우리의 출국 일정 연기는 확정이 되었다.
사실 이 상태로 출국해 봤자 어디 정신 차리고 생활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일단 나의 수술 일정만 단순 계산하여 3개월가량을 미뤘다.
최소 3개월 동안 우린 한국에서 살아야 했다.
직장을 구하기도, 그렇다고 그냥 놀기만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바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았다. 생활비까지는 안돼도 식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활동적인 걸 해야지 생각했다. 그래야지 없던 정자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줄넘기 보조 선생님 일자리가 눈에 띄었다.
키는 작지만, 그래도 나름 어필이 되도록 소개문구를 만들어 지원했다.
이 밖에 카페 알바, 야채 가게 등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줄넘기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는 거였다.
면접은 한주가 지나 보러 갔다.
키가 작아서 탈락하면 어쩌지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내가 이력서에 거짓말한 것도 없는데, 탈락하면 다른 거 찾아보면 되지 뭐.'
긴장된 마음으로 학원 문을 열었다. 관장님 키가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승산이 있겠는데?'
자리에 앉아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눴다.
몇 개월 일할 거냐, 왜 이 일을 하려는 거냐 등
꽤나 진중한 질문도 들어왔다.
'그냥 아르바이트 아니었나..?'
처음 본 사람한테 내 사정을 다 설명할 순 없었다.
'호주에 가려고.. 퇴사를 했는데.. 산전검사를 했더니.. 무정자증이 나와서. 이걸 어떻게 얘기해?'
그냥 커리어 전환이라 에둘러 설명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활동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지원했다고. 한 3개월 정도 공부하면 회사 지원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관장님은 본인의 계획을 얘기했다.
본인은 2호점을 낼 계획이며, 사실 이 일자리는 지도관장직을 뽑기 위한 자리였다고.
관장을...찾고 계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