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6월

5일 만에 먹구름은 우리의 비행기까지 집어삼켜버렸다.

by writingsean

점검 차 방문했던 병원에서 무정자증 진단,

아르바이트 면접 자리에서 받은 관장직 제안.

알 수 없는 사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한 주였다.



떠나기로 했던 날

사람마다 모두 주소지 정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처음 독립할 때였다. 주소지도 새로 신고해야 한다는 걸 새삼 처음 알게 됐다.

근데 해외로 가는 사람들은 주소지를 어떻게 신고해야 하나?

우리가 살던 집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될 텐데, 그분들께 양해를 구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해외에 오래 나가게 될 경우, 해외에 오래 있을 거라고 신고하면 된다. 해외 장기 체류 신청이라는 건데, 그럼 주소지를 특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세를 질 필요도 없고,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도 없다. 우리도 미리 이걸 신청했다. 호주에 오래 머무를 줄 알았더랬다.


월요일은 우리가 인천공항으로 발을 옮기기로 했던 날이었다. 아내는 발이 아닌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였다. 그러곤 조용히 알렸다.

"해외 장기 체류 신청 취소했어"

예보도 없이 나타난 새까만 먹구름은 우리의 발을 묶었다.

5일 만에 먹구름은 우리의 비행기까지 집어삼켜버렸다.




면접 결과

줄넘기 선생님 아르바이트 면접은 바로 그다음 날 보러 갔었다.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관장직 면접이었다는.

우리의 사연을 구구절절 얘기할 수가 없으니, 일단 고민해 보겠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관장님도 고민해 보고 연락 달라고 했다.

언뜻 그럴싸해 보이는 기회에 기분은 살짝 들떠있는 상태였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설명했다.

아내는 바로 하겠다고 얘기하라 했다. 일 하면서 고민해 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석 달 뒤에 비행기를 탈지, 한국에 계속 있을지 알 수가 없다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

머리 위 먹구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산 정도는 쥐고 있어야 했다.

관장님께 문자로 답했다.

관장을 할 진 모르겠으나, 일단 일하면서 고민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줄넘기 선생님이 되었다.




소원 투어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

아마 가고 싶은 곳을 가보기 위해서 떠나지 않을까. 우리는 반대였다. 지금 이 공간을 떠나고 싶어서였다.

이국땅을 밝기 위해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짐은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짐들은 비행기는커녕 공항버스조차 타지 못한 채 그곳에 며칠째 방치되어 있었다.

거실을 지날 때마다 바리바리 싸놓은 짐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은 왜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했을까.

짐을 풀 엄두 따위는 생각조차 못하는 시간이었다.


그게 두려워 집을 떠났다. 저것들은 발이 없으니, 우리가 몸을 옮겨야 했다.

주말마다 그냥 가보지 못한 어딘가로 떠났다.

대구, 가평, 거제..


돌이켜보면 일관성 하나 없어 보이는 여행지 선정에도 한 가치 규칙이 있었다. 바로 소원을 빌 수 있는 곳을 갔던 것이었다. 전국 곳곳마다 명소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소원 명소가 있어야만 관광지가 되는 건가?

아무튼 뭐든 빌 수 있는 곳에 가서 빌었다.


'검사 결과 잘 나오게 해 주세요.'

'수술 잘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으나 아쉬운 쪽이 매달려야지.

그렇게 전국 방방 곳곳 소원 성지를 찾아 머리를 조아렸다.

그게 우리의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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