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죽을 순 없어

우리의 버킷리스트까지 찢어지도록 둘 순 없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by writingsean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 이찬혁 "파노라마" 中 -





아내의 결혼관

나는 아이를 갖고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은 아니었다.

그보단 성공하는 게 꿈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성공이 뭘 의미하는 진 모르겠지만, 남들이 다 아는 그런 성공을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결혼도 일찍 할 생각은 없었다.

가정은 남들이 얘기하는 성공이라는 걸 이룬 후에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대충 서른 후반 즈음에는 결혼하지 않을까 라는 게 20대 초반의 내가 갖고 있던 아주 막연한 계산이었다.

그러다 생애 첫 소개팅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와는 다른 결혼관을 갖고 있었다.

만난 지 100일 즈음되었을 때였나

가벼운 패딩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의 밤이었다.

여자친구였던 아내와 나는 동네 호수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나왔다.

공원 근처 주차를 하고 차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김동률의 취중진담이 재생되고, 차 안에선 3명의 김동률이 취중진담을 열창하고 있었다.

함께 열창하던 아내는 갑자기 내게 소리쳤다.

"우리 결혼해!"


아내는 부끄러웠는지, 창밖을 보며 나에게 청혼했다.

술 한잔 마시지 않은, 그야말로 맨 정신에 나온 아내의 청혼이었다.

나는 그냥 일종의 사랑 표현이라 생각했다.

연인 사이라도 자기야, 여보야 라는 호칭을 쓰는 커플이 많으니,

그런 맥락에서 나온 애정 표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진심이었다.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근데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하지?

그렇지만 아내가 진심인 것 같아 나도 내 진심을 얘기했다.


"어른들은 흔히들 사계절은 만나봐야 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단맛, 쓴맛 모두 맛보고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아내의 청혼의 첫 청혼(?)을 거절하고

3년이라는 시간을 만나 지금의 아내를 배우자로 맞이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갖는 게 아내의 유년시절부터 이어온 하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살아서 그런가

나도 자연스레 물이 들었다.

나에게 스며드는 색깔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내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주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찬물이 끼얹힌 것이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산전검사 결과는 우리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게 아니었다. 음악 속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 아직 정밀 검사가 남았다.

우리의 버킷리스트까지 찢어지도록 둘 순 없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인터넷과 AI를 동원해서 정보를 찾아봤다.

정자 생산에 좋은 게 뭐가 있나..

결국 해볼 수 있는 건 식습관과 운동뿐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토마토가 좋다 하여 매일 토마토를 최소 1개씩 먹었다.

아몬드와 호두가 좋다 하여 매일 한 움큼씩 먹었다.

카페인이 좋지 않다 하여 매일 2잔씩 마시던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마시거나 차를 마셨다.

아연, 코큐텐.. 등등 정자 생산에 좋은 각종 영양성분을 찾아, 이걸 섭취할 수 있는 영양제를 사서 먹었다.

주 3회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좋다 하여, 삼성 헬스 달리기로 시간을 측정하며 매일 아침 달렸다.

오후에는 줄넘기 선생님으로 일하다 보니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며 살았다.

정자를 위한(?) 나의 생활은 정밀 검사 후에도 계속됐다.


그렇게 비뇨기과에 첫 방문의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다시 비뇨기과를 찾았다. 찍기로만 가득 채운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하필 인생 버킷리스트가 걸린 시험이라니.

시험 결과가 잘 나오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탈락이라는 결과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갔다.


우리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진료실로 이동했다.

우리는 진료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의자에 앉기도 전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비폐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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