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please!

한 마디씩 내뱉어보기

by 뭉클몽글

매해 3월은 혼돈의 카오스이다.

영어유치원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꼬맹이 5세 친구들이 적응을 해야 하는 시기라 더 그렇다.

그래도 나름 어린이집에서 1년 정도 생활하다가 입학하는 사회생활 경력자 친구들이 처음으로 기관생활을 하는 친구들보다 아주 조금 덜 운다. 그 시기 아이들은 누구나 그렇듯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기 마련이니까... 일주일 내내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계속 우는 친구들, 울다가 지쳐 힘 빠져 잠드는 아이들, 울다 못해 다시 집에 가는 아이들, 난 괜찮아하며 처음 아니듯 적응 잘하는 아이들...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어쩜 매년 그렇게 골고루 섞여서 입학을 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들은 내 아이 처음 영유 보내놓고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하원하길 기다릴까. 한국말로 원활히 소통 안 되는 원어민선생님과 잘 지내기는 하는 걸까, 밥은 잘 먹을까, 화장실은 잘 다녀올까 등등의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아이와 함께 영유 학부모로서의 비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환영과 반가움. 놀람과 울음, 적응과 안정감을 빗댄 나물에 고추장 팍팍 넣고 비빈 전주비빔밥 같은 3월이 지나면 아이들도,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영유는 아이들이 등원하면 원에서는 영어로만 생활하는 것이 규칙이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모든 교사들은 영어로만 이야기한다. 영어환경을 깔아준다는 뚜렷한 목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영어환경에 처음 발은 내디딘 5세 친구들은 예외이다. 아직 한국말표현력도 부족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여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라 5세 전담 한국인 교사들은 영어와 한국말을 적절히 섞어가며 아이들을 편안하게 대한다.


신기하게도 영어와 한국어가 밀크셰이크처럼, 뭐가 얼음인지 바닐라아이스크림인지 모를 정도로 부드럽게 섞인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편안히 몇 개월 정도 생활하다 보면 본인들도 모르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하기 시작한다. 조그만 아이들 입에서, 한국말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 마디씩 내뱉는 영어단어는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이상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나랑 다르게 생긴 저 머리 노랗고 코 큰 원어민선생님이 이해하기에 충분한 표현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님!" 하지 않고 "Teach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Teacher가 바로 반응을 하니까...


이렇게 첫마디를 띄고 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쉽다. 아무 말에나 다 가져다 붙여도 되는 한국말로는 "~주세요."와 상통하는 "Please!"를 남발하기 시작한다. "물, please!", "쉬, please!", "스티커, please!" 어느 순간 플리즈라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한국말이든, 아는 영어단어든 마지막에 항상 플리즈를 붙인다.


이 것이 바로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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