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시간

[모임] 어쩔 수가 없.. 겠냐고

영화감상문 2026.2.14

by 읽고 쓰는 마음

올드보이로 시작해서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어쩔수가없다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박찬욱 영화를 꾸준히 챙겨봤다. 최애는 역시 금자씨.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박쥐 같은 박찬욱식 남성 서사는 내 기준에 너무 거칠지만 여성 서사는 좋아하는 편이다. 금자씨의 연하남이나 아가씨의 하정우처럼 여성 서사에 조력하는 남자들도 매력적이고. 이번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중장년 남성 서사라는 점에서 약간 고민했지만, 14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믿고 영화관으로 갔다.


도입부에서부터 박찬욱의 영상미는 빛을 발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을 정원이 화면에 생생하게 담겼고, 여자를 예쁘게 찍는 재주도 여전해 손예진은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라는 설정이 무색할 만큼 상큼한 과즙미를 팡팡 뿜는다.


처음엔 주인공 유만수네가 미국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집 10채 중 8채가 공동주택인 한국에서 단독주택에 온실까지 갖춘 넓은 정원,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는 그만큼 이국적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구범모, 최선출 역시 단독에 살고, 만수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장소 역시 어느 단독주택의 옥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제지업계 사람들은, 손 많이 가는 단독을 고집하는 뚝심만큼이나 직업관도 경직돼 있다. 만수의 아내 미리는 남편이 실직하자 곧장 테니스와 댄스를 그만두고, 치위생사로 취업한다. 개들은 부모님 집에 보내고, 넷플릭스 구독을 끊고, 집을 파는 등 달라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범모의 아내 아라도 마찬가지. 실직했다고 집에서 술이나 푸는 무기력한 화상을 끌고 뒷산 산책도 나가고, 오디오를 좋아하니까 음악 카페를 해보라는 권유도 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다르다. 물론 그들도 노력을 한다. 죽도록 노력하고 죽일 만큼 노력한다. 문제는 그 노력의 방향성이다. 전문성이 필요한 고급 취미인 오디오, 분재 등의 차선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종이 아니면 안 돼, 종이밥을 먹어야만 해' 같은 똥고집을 부린다.


만수는 자신과 너무나도 비슷한, 어쩌면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자 가능성일 수도 있는 범모와 시조, 선출을 차례로 죽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점 대담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범모를 죽이려 했을 때는 아라의 불륜남인 척하지만, 시조를 죽이러 가서는 모자를 깊이 눌러써 얼굴을 감춘 채로도 진짜 자기 얘기 - 실직당한 처지와 첼로 천재인 딸을 팍팍 지원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 - 를 털어놓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마지막 희생자 선출에게는 '내가 태양제지 실직자 유만수'라며 신분증까지 내밀어 스스로를 인증한다. 살인 시도 실패와 내키지 않는 살인을 거치면서 변모한 만수는 선출을 능숙하게 처리해 그토록 열망하던 자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는 선출을 죽임으로써 일자리뿐 아니라 외로운 신세까지 물려받은 건지도 모른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미리는 다시 테니스를 치라는 만수의 권유를 거절하며 이제 돈을 모으겠다고 말한다. 박 감독은 코멘터리에서 미리가 시원을 온실로 불러 "방금 나간 저 남자, 네 친아빠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찍었다가 삭제했다고 전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바로 브라를 벗고 남편을 배신할 수 있는 미리가 과연 만수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갈까? 사과나무 아래 묻힌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홀로서기할 결심을 굳혔을지도.


의붓아들 설정은 왜 나온 건지 궁금했는데, 어쩌면 만수네 집안에 흐르는 정신 병력의 대조군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만수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으로 PTSD가 생겼고, 돼지 2만 마리를 살처분한 뒤 자살한다. 만수 역시 알코올중독 전력이 있고, 편집증 기질이 강하다. 아내에게 어떤 팬티가 있는지 전부 알고, 옷장을 뒤져 오늘은 뭔가 없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정상이라 하기 어렵다. 그런 만수의 친딸인 리원은 자폐 스펙트럼이다. 현실적이고 생활력 강한 미리와 그 아들은, 만수 집안의 유전적 결함에서 자유롭기에 언제든지 그를 떠나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만수는 내내 어쩔 수가 없다고 읊조리지만 실은 대안이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내세워 같은 처지의 구직/실직자들을 죽였을 뿐이다.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회사 측도 짜고 치는 듯이 그 한마디를 반복한다. 어쩔 수가 없다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어쩔 수 없이 기계화해야 한다, 사람 잘라야 한다, AI 도입해야 한다.. 구조적인 도전과 시련에 직면한 노동자/인간들의 선택은 이기주의로 귀결된다. 나만 살면 돼.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돼. 그렇게 흘러가서 마지막 풍경은 만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공장이다. 아직 인간이 있건 말건, 기계 설비는 조명이 필요 없기 때문에 불을 꺼버리는 AI. 다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을까. 대안을 찾는 건 어렵고 힘들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키우는 일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일단 내가 AI를 안 쓰면 나만 뒤처지니까. AI를 써야 내가 편하니까. 데이터센터가 세워진 동네에 사는 인간들이 소음과 전자파 문제로 고통받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외면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느슨한 연대뿐인 것 같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연대. 목청을 높이고 시간을 들여 떠들어봐도 깔끔한 소통은 안 되지만, 대충 이해했다고 치고 서로 위해주자는 연대. 참 미약하고 한심한데 다른 수가 없다. 아무리 AI 시대라고 해도 인간이 육체를 입은 이상,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지닌 이상은 어쩔 수 없는 부분.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력은 집단으로 기능하는 데 있다.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써의 연대. 유전자 깊이 각인된, 무리에서 버림받으면 죽는다는 공포. 사람 없는 곳에 가면 천국이라고 좋아하지만, 며칠만 사람들과 대화를 못 해도 시무룩하니 기분이 축 처지고 만다. 나라는 개체가 번영하기 위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교류와 연대. 마치 비타민처럼, 지나칠 필요는 없지만 부족하면 반드시 말썽이 생기는. 그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의무적으로, 가급적 기꺼운 마음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수밖에. 이거야말로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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