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중한 것 2025.11.29
우리 동네에는 저수지가 있다. 집 뒤편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던 만만한 공터 크기의 저수지가 나온다. 그 저수지가 사라진다고 한다. 얼마 전 시에서 개최한 설명회에서 알게 됐다. 저수지 아래쪽에 댐을 세운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참석한 행사였다.
우리 동네는 2013년 대홍수 때 침수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콘도 주차장으로 물이 콸콸 흘러들어 가는 영상이 바이럴을 타고 온라인에 퍼지기도 했다. 덕분에 하수도가 역류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보험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때부터 시작된 홍수 대책의 일환으로 댐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사실 댐은 임시방편이고, 지하에 파이프를 매설해 빗물과 지하수를 강으로 보내고, 저수지를 메워 홍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작업이 다 끝나면 댐도 허물 예정이고.
설명회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당황했다. 질문과 항변을 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갈라지고, 높아졌다. 이 동네에서 10년, 20년씩 살면서 저수지 근처를 산책하고, 애들과 개들을 데려가 주변을 뛰놀게 했던 사람들이다. 마음속에 동네 풍경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저수지가 졸지에 사라진다는 건 청천벽력이었다. 설명회에서는 많은 얘기가 나왔다. 철새들과 송어의 서식지인 저수지의 환경적인 가치, 동네 경관에 기여하는 환경미화적 가치, 이 변화로 인한 집값 하락 가능성을 염려하는 경제적 가치. 여기 더해서 시를 믿을 수 없다, 이제까지 관리도 제대로 안 됐고, 투명한 소통이 없었다, 저수지를 메워야 한다는 보고서에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하는 불신.
시는 시대로 치밀하게 답변을 준비했다. 1980년대부터 저수지가 있었는데 왜 이제 없애겠다고 난리인가. 본래 이 저수지는 개인이 농업용수를 조달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시가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발이 진행되면서 저수지 아래쪽으로 집들이 더 많이 생기고, 기후 변화로 홍수 위험성이 커져 이제 시가 관심을 가질 사안이 됐다. 이 건을 조사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업체 2곳을 고용해 분석한 결과, 두 곳 모두에서 홍수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수지를 메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최대한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흙으로 댐을 짓고, 파이프 공사 이후 댐을 허문 다음에는 주민들이 여전히 물을 즐길 수 있도록 실개천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반발의 뿌리에는 감정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애착과 추억은 아무리 더 좋은 새것을 주어도 대체할 수 없다. 세상에는 많은 가치가 있고, 그들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기에 우리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저수지에는 환경적, 경제적, 실용적, 감정적 가치가 있지만, 안전은 이 모든 것에 우선하고 우리는 저수지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그 결론을 납득하고, 저녁 늦게까지 사람들의 불만을 받아내며 일하는 시 공무원들에 대한 연민을 품은 채 집에 돌아왔다. 문제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노력하고, 실개천까지 복구하겠다는 시에 감사하기는커녕 너네를 어떻게 믿냐, 저수지 없애야 한다는 보고서도 다 구라 아니냐는 사람들에게 약간 환멸이 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이 동네에서 8년을 살았어도, 산책은 내가 가자고, 가자고 졸라야만 관계 유지를 위한 노역을 한다는 식으로 나가는 두 사람은 저수지가 없어진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까짓 거 뭐가 중요하다고. 없어지면 없어지는 거지. 그 순간, 속에서 무언가 왈칵 끓어 넘치면서 설명회의 진상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수지가 나에게 어떤 감정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가와 함께. 그 가장자리에 서서 바라보면 햇살이 물결에 부딪혀 부서지고, 한겨울만 아니면 거위와 오리들을 볼 수 있다. 봄이 되면 아기 오리들을 거느리고 수영 연습을 하는 오리 엄마가 정다워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 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집이 나의 드림하우스다. 밀리언하우스에 살면서 그 넓은 집을 청소 및 관리하고 싶은 의욕은 없지만, 그 집만큼은 탐이 난다. 그 집 발코니에 의자를 두고 앉으면 저수지를 실컷 구경할 수 있으니까. 저수지에 주변의 풀과 나무, 하늘이 퐁당 담긴 풍경은 지금 내 폰 배경화면이다.
그 가치는 실재한다. 남들이 보지 못해도, 실감하지 못해도. 때로는 내 진심을 알기 위해 외부와의 충돌이 필요하다. 진심을 깨달은 덕분에 저수지를 제대로 애도할 준비가 됐다. 취업 준비하면서 쓰라린 고배를 마실 때나, 첫 출간 계약을 하고 뛸 듯이 기쁠 때나 언제나 함께 했던 저수지. 네 안에 내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듯이 너는 내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우리 동네 풍경으로 남아있을 거야.
내가 기억하는 한 넌 사라지지 않아. 나의 저수지, 우리의 저수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