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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은돌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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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쓰다 Dec 28. 2024

돈 싫어하는 사람?!

은돌어록_원래대로 머신이 있다면

2014년 6월 7살
은돌 : 반쪽머신처럼 원래대로 머신이 있다면 좋겠어요. 먹던 도넛이 새 도넛이 되고, 구운감자도 새 거가 되고, 삐요 바퀴도 생기고 음 또..
엄마 : 근데 저금통은 하면 안 되겠다. 원래대로 하면 돈 다 없어지잖아..
은찬 : 응. '돈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엄마 : !!?!!?!


은돌이는 아이*린지라는 학습놀이 프로그램을 했었다. 매 달 학습지와 함께 교구 놀잇감들이 집으로 배달되었고 매번 재밌게 흥미로워하며 활용하곤 했다. 아기호랑이 호비가 메인 캐릭터였는데 그 호비가 나오는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았었고 영상과 교재에 맞는 엄마표 후속놀이를 하며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물건을 넣으면 반쪽만 나오는 '반쪽머신'이 주제로 나오는 영상이 있었는데 그것을 반대로 생각한 은돌이가 '원래대로 머신'을 생각했고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칭찬해 주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그러다가 문득 저금통이 떠올라 내가 건넨 말에 은돌이는 상상도, 예상도 못한 반응을 했고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순수한 마음의 은돌이가 한없이 귀여웠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데. 없으면 너무 불편하고."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순수함이 예뻐서 그냥 "그러면 되겠네." 라고 했던 것 같다.


'원래대로'의 시점을 내가 지정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다른 스타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춘기 남매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지금으로선 천사 같고 엄마밖에 모르던 때를 지정해서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육체적으로 힘든 적이 많았으니 막상 돌아가면 후회할 수도 있겠지.

내 통장에 들어있던 적 없던 큰돈이 잠깐 스쳐갈 때로 돌아가면 좋겠다.

속세에 찌든 나는 물질의 노예구나. 하아.




은돌이는 식당 이름을 순한식당으로 지을 거야. 안 맵고 안 짠 음식으로.
어린이는 볶음밥이나 비빔밥, 후식으로는 주스를 줄 거야.
어른들 메뉴는 새우튀김밥, 새우김밥, 오징어김밥, 문어김밥
최초음식ㅡ계란, 햄, 두부, 밥, 국, 오징어와 문어가 들어있는 파전
ㅡ201404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최대한 자극적인 음식들을 늦게 주려 노력한다.

나 또한 임신 전부터 책으로 육아를 시작한 터라 이유식도 책 한 권을 쑥 훑으며 진행하고 자극적이고 간이 센 음식을 최대한 늦게 주려 노력했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탄산음료를 사주지 않았고 비타민이나 마이쮸부터 짠맛이 강한 간식들도 노출되지 않게 하려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열일곱 살이 된 지금은 그때 못 먹은 염분을 모조리 다 채워 넣을 작정인지 신기하리만치 나트륨이 높은 과자들을 잘도 찾아내 사다 먹고 스프 다 넣은 라면을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마셔버린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 후후거리며 우유나 물을 찾곤 했는데 그래서 순한 음식이 있는 식당을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메뉴들은 어디선가 들어보고 먹어본 메뉴들과 그것들의 조합인 걸로 추정된다.


(이 말을 한 뒤로 식당에서 직원이 상 닦는 거 보고 식당 못하겠다고 했다. ㅎㅎ)




엄마엄마엄마 예쁜 거 보여줄게요. 기다려봐요.
짠! 와~~~~! 예쁘죠?
ㅡ20140429


유치원에서 돌아온 은돌이가 엄마를 열 번쯤 부르며 소파에 앉혔다.

예쁜 걸 보여준다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오늘 만든 것 같은 색종이 카네이션을 보여준다.

짠! 까지는 귀여워하며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와~~~~!"라니?!? 이건 엄마가 해야만 했던, 엄마로부터 듣고 싶었던 격한 호응을 스스로에게 인지 엄마에게 인지 모르게 한 것 같은데 너무 놀라운 트(?)가 아닌가.

모르면 몰라도 볼을 세게 비며 옴짝달싹 못하도록 꽈악 안아줬을 것 같다.

가끔 그맘때의 영상이나 녹음파일들을 들어보면 얼마나 수다쟁이인지 목소리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때의 마음과 사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기도하고.


효과음 부자인 엄마 아들이라 그런지 상상도 못 한 자체칭찬으로 엄마를 웃게 만드는 우리 은돌이.

매분 매초 사랑해.


(이렇게 받은 편지나 카드들은 추억상자라 이름한 각종 신발상자에 들어차있고 가끔 추억을 곱씹어보며 하나씩 열어 그때의 넘치던 사랑을 조금씩 들이마셔본다. 지금도 친구들은 사춘기 아이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참으로 넘친다고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일뿐. 첫사랑의 회복이 필요한 순간 다시 추억상자들을 꺼내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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