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척은 이제 그만. 인스타그램을 지우다.

타인의 하이라이트 훔쳐보기를 멈추게 된 그날 밤.

by 라이팅유주

밤 열두 시. 안방에서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건넛방에서는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섞여 들려오던 어느 날 밤이었다. 각자의 하루를 마감하고 모두가 잠든 이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자유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귀한 시간을 스마트폰의 푸른 불빛 아래서 속절없이 탕진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은 기계적으로 화면을 쓸어 올리느라 바빴다. 1초에 하나씩 타인의 인생이 내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다. 입사 동기의 승진 소식, 동네 엄마의 화려한 호캉스, 아는 후배의 완벽한 바디 프로필 사진. 그 네모난 세상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독하게 행복해 보였다. 마치 서로 경쟁하듯 "내 인생이 얼마나 완벽한지 좀 봐 줘요"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눌렀다. 영혼 없는 하트였다. 댓글도 달았다. "와 OO야, 너무 부럽다! 최고!" 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아니, 너무 부러워서 배가 아팠고, 동시에 초라한 내 현실이 거울처럼 비쳐 비참하기도 했다.


화면 속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데, 화면 밖의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목이 늘어난 티셔츠 바람이었다. 식탁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잔해들이 그대로였고, 집안 곳곳엔 오늘 하루가 할퀴고 간 자국들이 역력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또다시 전쟁 같은 등교 준비와 출근 준비가 시작될 참이었다.


SNS는 거대한 쇼윈도였다. 그곳에는 슬픔도, 우울도, 찌질함도, 나의 그 어떤 '진짜 모습'도 전시될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나 역시 공범이었다. 남편과 대판 싸웠던 가족 여행에서도 나는 가장 있어빌리티한 사진을 고르고 골라 거짓 행복을 전시했으니까. '좋아요' 개수에 안도했으며,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에요"라는 댓글에 위안을 얻었으니 말이다.


나의 불행이나 속마음, 고민을 전시할 수 없다는 것. 아니, 나의 평범함조차 실패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것이 인스타그램이 주는 피로감의 실체였다. 우리는 서로의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편집해서 보여주지만, 서로의 비하인드 컷은 철저히 은폐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멈췄다. 문득 화면 위로 스마트폰 불빛에 파랗게 질린 내 얼굴이 비쳤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타인의 행복을 훔쳐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이 짓을 언제까지 반복할 셈인가.


나는 솔직하게 내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사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밥 챙겨주는 기계가 된 것 같아서 도망치고 싶어."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 사람 옆에서도 섬에 갇힌 듯 외로워."

"마흔은 넘었는데,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안개 속처럼 캄캄하기만 해."


이런 말을 할 곳이 없었다. 친정엄마에게는 걱정 끼칠까 봐, 남편에게는 자존심 상해서, 동네 친구들에게는 내 약점이 될까 봐 입을 다물었다. 인스타그램? 그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곳은 행복 강박증 환자들의 무도회장과 다를 바 없었다. 완벽한 가면을 쓰지 않고는 입장조차 할 수 없는 곳이랄까.


화면을 꾹 눌렀다. 앱 아이콘들이 겁에 질린 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아이콘 위에 뜬 작은 '설치 삭제' 문구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이 앱을 제거하시겠습니까?'

'확인'


순식간에 아이콘이 사라졌다. 묘한 쾌감과 함께 텅 빈 허전함이 밀려왔다. 이제 내 시간은 어디에 써야 하지? 이제 내 우울함은 어디에 기대야 하지?


나에게는 '대나무 숲'이 필요했다. 옛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복두장처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화려한 사진도, 그럴듯한 필터도 필요 없는 곳. 화장하지 않은 민낯으로, 정돈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배설해도 흉이 되지 않는 곳.


그때,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스레드'라는 게 나왔는데, 거긴 사진 안 올리고 글만 써도 된대. 그냥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곳이라던데?"


플레이스토어를 열었다. 검은 바탕에 하얀 실타래가 엉킨 듯한 아이콘. 'Threads'. 실, 가닥, 맥락이라는 뜻. 설치 버튼을 눌렀다. 가입 절차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했다. 프로필 사진을 등록하라는 창이 떴지만, 그냥 기본 설정된 회색 사람 모양 아이콘을 그대로 두었다. 자기 소개란도 비워두었다.


텅 빈 화면. 그리고 '새로운 스레드 시작하기'.

그 문구 밑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다 들어줄게요"라고 조용히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앨범을 뒤적여 사진을 고를 필요도, 구도를 잡거나 필터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생각과 손가락만 있으면 되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하지만 차마 뱉지 못했던 그 말을 적었다.

'여기. 진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사진 없이 글만 쓰니까 참 편하네.'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문장을 다듬지도 않았다. 그냥 '게시' 버튼을 눌렀다. 내 글이 타임라인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로 툭, 던져졌다. 좋아요는 0개. 팔로워도 0명.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글을 올리고 나니, 꽉 막혀 있던 명치끝이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억지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무대 뒤편의 대기실. 어쩌면 이곳이 나의 대피소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진 한 장 없는 밋밋한 텍스트들의 향연. 하지만 그 투박한 하얀 화면이, 알록달록한 사진들과 현란한 영상으로 도배된 세상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엎어두고 깊은 잠에 들었다. 머릿속에는 타인의 화려한 사진 대신, 내일은 또 무슨 말을 끄적여볼까 하는 즐거운 고민만이 맴돌았다. 숙제 같기만 했던 내일 아침이, 아주 오랜만에 기다려지는 밤이었다.


40대의 두 번째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